<소송의 부작용>


표현의 자유 문제 같은 류의 사안이 명예훼손 등의 쟁점으로 법적 판단을 받게 되면 이런 부작용에 노출됩니다. 그렇다고 소송을 하면 안된다는게 아니라,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얻을게 있을 때 소송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참고로, 형사재판에서 특히 이 문제가 불거지지만, 민사재판에서도 유사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소송은 사회의 다양하고 풍부한 논점을 합법/불법, 승/패라는 이분법으로 몰고 갑니다. 이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한 쪽에 몸을 실어야 합니다. '저자의 주장에 반대하지만, 처벌에도 반대한다'고 복잡하게(?) 외쳐봐야 그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소송이라는 무대에서는 한 편에 선 사람들이 '하나'일 것을 강요받습니다. "내가 여기 서 있기는 하지만, 실은..." 따위의 변명은 무용지물입니다. 그냥 자기 주장을 하면 되는데 소송이 시작되면 항상 거추장스러운 전제를 달아야 합니다. 참 고약한 일이죠.

소송결과가 나와도 문제가 해결된게 아닙니다. 유죄가 나왔다고 해서 그 표현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닙니다. 판사는 명예훼손이라고 판결하는거지, 그 표현의 사회,윤리, 학문적 가치가 부족했다고 판결하는게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 만사에 '문외한'인 판사가 세상의 온갖 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즉, 판결은 법정에 오를 수 있는 매우 제한적으로 선별된 논점에 대해서만 판결을 내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태의 '한 단면'만 판단하는거죠.

거꾸로, 무죄가 나왔다고 해서 그 표현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것도 아닙니다.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잘했다'는게 아닙니다. 그건 별도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무죄가 나오면, 사회는 "법원이 이 책을 지지했다"고 해석하겠죠. 판결문에는 명예훼손이 아니라고만 적혀 있는데 말이죠.

법정에서는 사태의 한 단면만 가지고 제한된 논의만 거듭되는데, 소송은 사회의 모든 논점을 빨아들여 법정만 쳐다보게 만듭니다. 그렇게 수년을 기다리면 겨우 최종판결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결론이 나와도 어차피 그 표현의 정당성을 놓고는 별도의 토론을 다시 해야 합니다. 그것도 유무죄 판단에 의해 이미 부당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렇게 소모적인 일이 또 있을까요?

명예훼손이 피해자의 심적 고통을 야기하고 그로 인한 권리 충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당사자가 원하는 한 소송 제기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소송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게 상책입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말이죠.

제가 오래동안 할머니들과 교류해왔다면 소 제기 이전에 어떻게든 소송까지는 가지 말자고 설득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런 제안을 하는게 무의미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책의 저자가 먼저 손을 내미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난망한 일입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 명의의 성명서 마지막 단락으로 마지막 단락으로 답답한 심정을 대신해 봅니다.

"끝으로 우리는,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고소라는 법적인 수단에까지 호소하시게 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깊이 되새기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거듭 상처를 주는 이러한 사태에 이르게 되기까지 우리의 고민과 노력이 과연 충분했는지 깊이 반성합니다. 그리고 외교적・정치적・사회적 현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의의 여신의 저울이 진정 수평을 이루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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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에 대한 일반이론은 『법사회학: 법과 사회의 대화』(다산출판사, 2013)에서 제가 집필한 부분인 "재9장 법과 사회변동"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Posted by transpr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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