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죄가 없다. 개헌 논의에 휘말리는 순간 게임 끝.>


박 대통령이 "개헌"이라고 콕 찝어서 말하지 않았을 뿐, 결국 개헌하라는 거죠. 국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것도 결국 개헌하라는 얘기. 여야 대표회담에서 "대통령은 내일 퇴진하기로 합의했습니다"라고 하면 내일 퇴진할건가요? 그게 아니라, 여야가 헌법 개정을 통해 임기단축에 합의하면 그에 따르겠다는 뜻이겠죠.


"이 헌법 공포 당시 대통령은 이 헌법 시행과 동시에 임기가 만료된 것으로 본다”을 부칙에 넣는, 오로지 임기단축만을 위한 '원포인트개헌'을 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이건 모양새도 그렇고 쉽지 않겠죠. 그냥 대통령이 내려오면 되는건데, 굳이 결과가 뻔한 국민투표를 하는 의미도 없고 투표비용만 아깝습니다. 그보다는 '통치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을 염두에 둔 것일 겁니다.


통치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이라면 어떠한 경우의 수를 봐도 새누리당에 유리합니다. 대통령 입장에서도 '퇴임 후 보장'을 위해서, 계속 버티다가 야당에 정권을 내주기보다는, 조기 퇴임하되 새누리당이 정권재창출하도록 하는게 훨씬 낫겠죠. 어차피 임기 채우는건 물건너간 것이라고 보고요.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 없는 새누리당의 입장에서, 통치구조 개편은 무조건 남는 장사입니다. 예를 들어, 내각제로 개헌하여 내년 5월에 내각제 정부를 출범한다고 하면, 대통령도 중도퇴진해야 겠지만 의회도 해산해야 합니다. 마땅한 '인물'이 없는 여당 입장에서는 내각제가 나쁠게 없죠. 안그래도 여소야대 국회인데, 국회 해산하면 땡큐고요.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한다고 해도, 현재 국회가 이원집정부제를 전제로 선출된게 아니기 때문에 현 국회를 해산하는게 맞겠죠. 이원집정부제에서도 다수당 대표가 내각책임총리가 되는거니까요.


개헌을 하면 '대통령' 포기 선언을 한 김무성은 (대통령과 다름 없는) 총리를 꿈꿀 수 있게 됩니다. '대통령' 안하겠다고 했지, '총리' 안하겠다고 하진 않았거든요. 개헌 추진과정에서 문재인에 대해서는 '대통령에 눈이 멀어 시대적 과제인 개헌에 반대하는 인물'로 낙인을 찍을 수 있게 됩니다.


통치구조를 개편하는 개헌과정이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개헌도 어차피 여야 합의 없이 불가능한데 논의과정이 쉬울리가 없습니다. 여당, 야3당 모두 동상이몽일텐데요. 일단 통치구조만 바꿀거냐, 선거제도, 기본권장전 등도 다 바꿀거냐만 해도 엄청나게 복잡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개헌 정국으로 가면, 박근혜 퇴진으로 촛점이 맞춰져 있는 현재 논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금번 사태는 박근혜가 잘못한거지 헌법은 죄가 없습니다. 애궂은 우리 헌법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우리 헌법이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30년간 잘 굴러왔고, 지금도 잘 활용하면 몇 년 정도는 더 쓸만한 녀석입니다^^ 차기 대선은 무조건 현재 헌법 체제 하에서 실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대통령 담화에도 불구하고, (개헌과 무관한) 퇴진, 탄핵, 특검, 국정조사로 모아진 현재 흐름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특히 쓸데 없이 '개헌' 논의를 하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고 봅니다. 개헌에 기웃거리는 순간, 게임 끝입니다. 


물론 개헌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한 과제고요. 그것이 마무리된 후에 개헌을 해도 하는 것이지, 개헌 논의를 끌고 들어와서 책임소재를 모호하게 만들고 정략적 이익을 챙기는 것은 곤란하다는 겁니다. 개헌은, 일단 현재 헌법으로 대선을 치루고, 대선 후보들이 개헌 방향을 공약으로 내걸고 추진하는게 합당하다고 봅니다.


Posted by transprom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