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독립에는 찬성, 브렉시트에는 노 코멘트한, 테니스 스타 앤디 머리>


윔블던 경기가 한창인데, 조코비치가 3회전에서 탈락하고, 앤디 머리(Andy Murray)는 무사히 4강에 진출했네요.


영국은 상당수 현대 스포츠 종목의 종주국이지만, '현재' 제대로 잘하는 건 거의 없습니다. 잉글랜드 축구가 국제대회에서 맥을 못추는 건 잘 아실거고, 윔블던도 1936년이 마지막 우승이었죠. 그런데 지난 2013년 앤디 머리가 3시간 넘는 접전 끝에 황제 페더러를 누르고 정상에 오릅니다. 머리도 울고, 영국 관중들도 울고 ㅠㅠ 영국은 난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머리는 4년 만에 다시 한번 윔블던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결승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페더러가 문제긴 한데, 작년처럼 페더러의 서브가 미친듯이 들어가지 않는 한, 앤디 머리의 우세를 점쳐 봅니다. (작년에는 4강에서 페더러 승)


그런데 앤디 머리는 잉글랜드인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인입니다.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우에서 태어나 스코틀랜드에서 테니스를 치며 유년시절을 보냈죠. 앤디 머리는 지난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에서 독립 찬성 의사를 분명히 밝힌 바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날 트위터에 남긴 메시지입니다. 


"오늘은 스코틀랜드를 위한 엄청난 날! 지난 몇일 동안의 독립반대운동은 내 마음은 동요하지 않았다. 결과를 보는 것이 흥분된다. 이제 독립을 하자!" 


머리는 이 발언 이후 독립반대세력에게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나중에 "그 발언을 후회하지 않는다. 누구든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고 했죠. 


하지만 그 때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 이번 브렉시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떤 생각도 없다. 올해는 할 일이 많다. 몇 주 전에 아이 아빠가 되었다. 올해는 그것이 정치적인 문제 어떤 것보다 우선순위다"


아이 아빠로서 충실하겠다는 의지는 좋은데, 노코멘트의 이유가 잘 설명되진 않네요 ㅎㅎ 암튼 저번 스코틀랜드 독립투표 때 입장을 밝힌 후 부담이 컸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 그가 실제로 어디에 표를 던졌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고, 투표결과에 대한 코멘트도 없었습니다^^;; 



* 영국 내 앤디 머리의 위상은, 대략 김연아, 박찬호, 박지성의 한국내 위상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머리가 한 정치적 발언의 파급력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되겠죠?

** 참고로,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당시, 앤디 머리는 런던에 거주하고 있어서 투표권을 행사하진 못했습니다.

***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해리포터를 집필했던 JK 롤링은 스코틀랜드 독립에는 반대했지만, 브렉시트 투표결과에 크게 실망하여, 그 후 "영국이여 안녕~", "스코를랜드는 독립해야 한다"며 입장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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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머리, 아내 진통이 시작되면 호주오픈 결승은 포기하겠다.>


지난 2016년 1월 호주오픈. 앤디 머리는 결승에 진출했고, 아내는 출산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테니스 선수에게 메이저 대회 우승은 쉽게 찾아오는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면 결승전을 포기하고 비행기를 타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출산을 지켜보지 못하는 것이 호주오픈 우승을 못하는 것보다 더욱 실망스러운 일이다."


지금은 영국이나 서구 사회에서 아내의 출산을 함께하는 것이 통상적인 것이 되었지만, 이런 변화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40년 전만 해도 영국에서는 출산을 함께하는 것이 남자 답지 못한 것(unmanly)으로 치부되었고, 심지어 아내는 출산하는데 펍에서 술 처먹고 있고 그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영국에서는 90%의 아빠들인 출산을 함께 한다고 합니다. 호주 오픈을 포기하겠다고 한 앤디 머리의 선언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는 것이죠.


사실 이것뿐만 아니라 서양사람들이 "우린 원래 이렇게 훌륭했어"라고 자랑하는 것 중 상당수는 최근(30-40년 정도)에 비로소 바뀐 것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도 좀 늦었지만 원래 민족성이 후지고 이런 것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바꾸면 되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프로선수들이 출산도 안하는지, 출산 때문에 경기에 불참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가 뛰게 되면서, '아내 출산'을 이유로 시즌 중에(!) 일주일 정도 휴가를 다녀오는 경우를 이미 경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넥센 나이트 선수가 4번째 아이 출산으로 비행기 타고 미국 다녀왔던게 생각 나네요.


여하튼 결과적으로 진통은 시작되지 않았고, 앤디 머리는 결승전을 치뤘지만 조코비치에 3:0으로 완패합니다. 그리고 이런 소감을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아내 킴에게 말합니다. 그녀는 지금 집에서 보고 있을 겁니다. 당신은 지난 2주동안 전설이었어요. 당신의 지지에 감사합니다. 다음 비행기 타고 집에 갈께요"




https://youtu.be/OCIMWb4vTCM



스피치 마지막에 나옵니다. (3분 10초부터). 그는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고, 우승자 조코비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 참고로 앤디 머리의 아내의 이름은 Kim Sears. 성이 아니라 '이름'이 '김'! 영국의 유명 테니스 코치 (현재 이바노비치의 코치) 나이젤 시어스의 딸이기도 합니다. 


** 참조기사: BBC, 남편이 출산을 지켜보기까지의 시간 (The length to which fathers go to see their child's bi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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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들이 거리를 그냥 활보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고요?>


남역 살인사건이 ‘정신질환자의 범죄’이기 때문에 ‘정신질환자 관리’가 해법인 것처럼 보도되는 경우가 있네요. 대충 모니터해봤더니, 엉뚱한 소리를 하는 보도가 꽤 있더군요. 핵심을 잘 짚은 곳도 있지만요. 일단, 조현병의 위험성? 보건복지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비정신질환자에 비해 높지 않습니다”, “치료를 잘 받고 있는 조현병 환자들은 범죄와 폭력의 위험성이 매우 낮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현병 환자들이 망상에 대한 반응이나 환청의 지시에 따라 기괴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동기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은 일반 인구보다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은 매우 드물다.”


더욱이 한국은 정신질환자의 3분의2가 비자의(강제)입원이며, 정신질환자의 평균재원기간은 247일로 세계 최장입니다 (스페인 18일, 독일 24.2일, 이탈리아 13.4일, 프랑스 35.7일, 영국 52일). 정신질환자를 ‘더 많이 감금’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이미 충분하고도 남아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지속적으로 보고될 만큼 정신질환자를 감금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예전에 혐오표현 강의를 가서, 제가 글쎄, “장애인에 대한 혐오표현은 한국에서는 이제 대 놓고 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라고 했지 뭡니까. 그런데 한 장애인 청중이 이런 의문을 제시하시더군요. 정신장애인에 의한 대구지하철 사고가 났을 때, “장애인들은 집 밖으로 한 발도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댓글이 수시로 달렸고, 그 때 자신은 “며칠 동안 무서워서 집 밖에 나오지 못했다”고 하시더군요. “장애인 입장에서 느끼는 장애인혐오표현의 문제는 다룰 수 있어요”라고 하셨고요. 저는 즉각 저의 섣부른 판단에 대해 사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장애인과 정신질환자는 구분되지만, 차별의 대상이 될 때는 혼동되기 십상입니다)


실제로 이번에도, “이런 사람들이 거리를 그냥 활보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는 댓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강남역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문제로 치부하게 되어, 편견과 낙인이 찍히면, 치료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더 어려워지고, 그들을 고립시키게 됩니다. 소수자에 대한 또 다른 차별과 편견, 배제 .... 이것은 여성혐오에 반대하고, 모든 차별과 적대와 폭력을 몰아내려는 현재의 움직임과 정반대의 방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대응’이 불필요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정신질환자의 인권과 사회복지를 강화하여, 사회에서 한 구성원으로 존엄한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래야 필요한 ‘치료’도 적절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요. 


참고로, 지난 5월 국회가 소리소문 없이 잘한 일이 하나 있는데, 정신질환자의 입원/격리 요건을 강화하는 정신보건법 개정법률안이 통과된 것입니다. 이제는 환자가 본인/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을 때에만 입원이 가능하고, 최대 입원기간도 3개월로 줄었으며 (기존 6개월), 강제입원된 이후에도, 의사, 법조인, 인권전문가로 구성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오랫동안 이슈화된 문제가 간신히 법제화된 것인데,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참고자료1) 보건복지부,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16.2.23.)
○ 언론보도, 영화·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의 범죄 및 폭력 위험성이 높다는 편견이 많지만,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비정신질환자에 비해 높지 않습니다. 
○ 대검찰청 범죄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정상인 범죄율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2015년에 발표된 다른 논문에서도 2005년과 2015년의 우리나라 정신질환자의 범죄비율이 증가하지 않고 일정한 비율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국민들은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높다거나 최근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등의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치료를 잘 받고 있는 조현병 환자들은 범죄와 폭력의 위험성이 매우 낮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 공격성과 잠재적 범죄를 ‘일반적인 증상’으로 하는 정신질환은 반사회적 인격장애 한가지뿐이며 이를 제외한 나머지 정신질환은 공격성과 잠재적 범죄성향이 일반인구에 비해 높지 않습니다. 일부 정신질환은 일시적으로 조절되지 않은 충동성 때문에 자타해 위험성을 보일 경우가 있지만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마저도 타해 위험성은 자해 위험성의 1/100 수준입니다.
○ 또한 정신증 환자의 범죄는 대부분 첫 치료를 받기 전에 발생하며, 치료를 받은 이후에는 범죄 위험성이 94%나 감소하기 때문에 적절한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참고자료2)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성명서 (2016.5.23.)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에서 기인하는 편견과 낙인은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과 혐오가 될 수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커지면 환자와 가족은 낙인으로 인해 질환을 인정하기 더 어려워지고 돌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갈 가능성이 높으므로, 편견을 조장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조현병 환자들이 망상에 대한 반응이나 환청의 지시에 따라 기괴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동기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은 일반 인구보다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은 매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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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GV78YamzO4


샌더스가 보수주의의 산실인 리버티대학에서 한 명연설. 정말 훌륭합니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최소한의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모범적인 연설이 아닐까 합니다. 유튜브 베스트 댓글이 인상적입니다. "리버티대학에 있는 사람들이 모든 쟁점에 대해 샌더스에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가 말한 것들을 존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리버티대학은 미국 보수주의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던 제리 폴웰 목사가 설립한 대학. 폴웰 목사는 낙태, 동성애, 학교 내 종교, 인종 문제 등에서 상당한 사회적, 정치적 영향을 끼친 인물이죠. 래리 플린트가 허슬러 잡지에서 폴웰을 조롱해서 대법원까지 간 사건, Hustler Magazine v. Falwell 의 당사자가 바로 폴웰 목사입니다. 표현의 자유 판례 중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죠. 결과는 래리 플린트가 결국 승소.


* 폴웰 목사는 2007년 사망했고, 연설 첫마디에 언급되는 제리 폴웰 총장은 폴웰의 아들인 '제리 폴웰 주니어'입니다. 미국 보수주의의 사학 세습 현장? ... @.@


** 50분에 달하는 질의응답시간도 대단한데, 이건 한글자막은 없습니다. 링크 참조. https://youtu.be/EujLpZKJ15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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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덕분에 기본소득 논의가 뜨거워서 상당히 흥미롭네요. 저는 이 분야에 직접적인 전문지식은 없지만, 법철학/사회학적 관점에서, 기존의 선별복지가 시민의 자유에 어떤 부작용을 주는지, 반대로 보편복지(기본소득제 포함)가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건 기본소득제 도입에 따른 '하나의 측면'을 본 것이지 전체적으로 조망한 것은 아니고요. 그래서 기본소득제를 당장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하고도 거리가 있습니다. 깔대기로 링크를 걸어 봅니다.


홍성수, “복지국가에서 법에 의한 자유의 보장과 박탈: 하버마스의 비판과 대안”, 『법철학연구』, 제18권 제1호, 2015, 157-186쪽.

http://transproms.tistory.com/157


흔히 기본소득제를 비롯한 보편복지의 장점으로 인간존엄과 사회통합에 유리하고, 비용이 적게 들고, 사회적 낙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 언급되는데, 저는 추가적으로 보편복지체제 하에서는 (선별복지와는 달리) 국가/법에 의해 삶이 인위적으로 구조화되지 않는다(생활세계의 식민화)는 점을 집중적으로 살펴봤습니다.


기본소득제를 한다니까, '현급지급'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분들이 계시던데, 현금지급은 이미 기존의 복지제도에서도 활발하게 활용되어 왔던 겁니다. 특히 기본소득제가 '대체'하려고 하는 기초생활보장제, 실업급여, 노령연금, 기타 수당 (가장 강력하게는 국민연금) 등은 현재도 하나같이 '현금'을 지급하고 있으니, 이 점은 기본소득제로 대체된다고 해서 달라질게 전혀 없습니다.기본소득제의 차별점은 '심사 없이, '무조건'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보편적'으로 지급된다는 것에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고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하는 핵심 논거이기도 합니다.


한국형 기본소득제는 월 10만원부터 100만원까지 다양한 버전이 있고, 나름대로 재원 마련 방법까지 제안하는 견해가 있지만, 그 비현실성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더군요.


여하간 저도 기본소득제를 오래전부터 뒤적거려보긴 했지만 섣불리 판단은 안섭니다. 핀란드가 앞장서서 '실험대상'이 되어주시겠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이죠^^


* 기본소득제 논의를 보면, 항상 재원 마련의 '비현실성'에 대한 반론이 나옵니다. 만약 당장 기본소득제를 하자는 '안'이 제출되어 찬반을 묻고 있는 상황이라면 아주 중요한 비판이라고 봅니다. 제가 그 당부를 따질만한 능력은 안되지만요. 다만, '당면한 정책'으로서의 기본소득제와 '이념'으로서의 기본소득제는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기본소득제는 노동/소득, 국가/개인, 복지 등의 함의에 대한 '관점 전환'의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철학 등을 하는 분들은 이 함의를 굉장히 중요하게 보죠. 저도 그런 맥락을 흥미롭게 보고 있고요. 이것는 '재원마련의 비현실성'이라는 비판에 태클이 걸릴 필요 없이, 그 자체로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주제입니다. 우리 삶과 사회의 질서를 어떻게 짤 것인가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논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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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던은 금기시되어야 하나?>


요즘, 빠던(빠따 던지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개인적으로 야구'문화'나 '불문율'(unwritten rules)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이건 법(규칙)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제 전공하고도 관련이 있기도 하고요. 영국 와서도 축구는 안보고 야구 책(불문율, 역사 관련) 몇 권 사서 보고 그랬네요 ㅋ


하여간 저는 빠던 가지고 뭐라고 하는건 잘 이해가 안갑니다. 어떤 스포츠에도 세레모니가 금기시되어 있진 않습니다. 축구에서는 골 들어가면 얼싸안고 덤블링에 슬라이딩까지 합니다. 야구였다면 영구제명감인가요? ^^;; 홈런치고 돌다가 덤블링 한번 하고 홈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하면 좀 그렇긴 하겠습니다만...ㅎㅎ 배구는 운좋게 블로킹 한 번 걸렸다고 만세부르고 아주 난리가 납니다. 물론 여기에도 금기는 있죠. 배구에서는 반드시 돌아서서 자기 편을 향해 세레모니를 합니다. 상대편을 향해 '직접' 놀리는 것은 어느 스포츠에서나 금기인 것이죠. 


근데 '빠던'은 전혀 다릅니다. 일단 미학적으로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자연스러운 스윙동작이 이어지면서, 공과 반대 방향으로 빠따를 날리는 모습은 야구에서 가장 멋진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ㅎㅎ 개인적으로는 박병호의 빠던이 가장 자연스럽고 완벽하다고 봅니다. 홈런을 워낙 많이 치니까 빠던 동작도 부드러운것 같아요 ㅋ 야구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이 동영상을 보시면, "아름답다"고 느끼실겁니다. 아니면 말고요 ^^;;


빠던 동영상 모음: https://www.youtube.com/watch?v=aqvJWrgNG_0


무엇보다 빠던은 상대방을 '직접' 자극하는 것이 아니고, 팔로우스윙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작입니다. 투수와 수비수를 향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투수나 야수는 날라가는 걸 봐애 하기 때문에, 배트가 날라가는 것은 잘 보기도 힘듭니다. 심지어 배트를 멋지게 던져놓고 플라이아웃될 수도 있어요. 다만, 홈런을 맞으면 투수가 많이 힘들긴 하니까, 그라운드는 그냥 묵묵히 도는게 좀 더 좋아보이긴 합니다만.... 더욱이 한국야구에서는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면서, 코치랑 하이파이브도 하고, 주먹을 불끈 쥐거나, 박수를 치면서 도는 정도까지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2005년 한국시리즈 3차전 8회말 양준혁 선수는 쐐기를 박는 3점 홈런을 치고 '어퍼컷 세레모니'까지 했었죠 (요건 저의 아픈 기억이라 특별히 기억에 납니다 ㅠ) 


사진 출처: 보시다시피


저런 어퍼컷 같은 것은 정말 상대편 입장에서 기분 나쁘겠죠. 하지만 뭐 축구나 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향해서 하지 않는다면 그러려니 하는거죠. 야구선수라고 해서 더 불쾌할 이유는 없습니다. 암튼, 이런 세레모니까지 한국야구에서는 다 수용되어 왔는데, 이제 와서 갑지가 "빠던'이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요컨대, 홈런치고 상대편 벤치나 투수를 향해 세레모니를 하지 않는 한 문제될 건 없다고 봅니다.


미국야구에서는 빠던이 금기라고 하지만, (예전에 7회 이후 도루 금지와 사구 보복에 대해서 글을 썼을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미국야구의 불문율을 우리가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봐요. 물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종주국이니까 존중하고 참고해야겠지만요. 미국야구의 역사를 보면, 초창기에는 완전 전쟁터였다고 하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상대를 조금이라도 자극하면 바로 보복구가 날라들고.... 뭐 그런 역사 때문에 미국야구는 전체적으로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됩니다.


오재원의 빠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LwxsD7v_Ro


오히려 오재원이 일본과의 준결승전(2015년)에서 잘못한 것은 '빠던'이 아니라, 1루타 치고 나가면서 일본 벤치를 향해 환호를 보낸 겁니다. 이건 야구가 아니라 어떤 스포츠에서도 용납되기 어려운 비신사적 행동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한국 입장에서 속이 시원했더라도 말이죠. 그건 욕먹어도 싼 건데, 빠던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건 저로서는 좀....;;


오재원의 일본벤치를 보며 한 세레모니: https://www.youtube.com/watch?v=13z2S9or_wA


대만기자가 황재균에게 "왜  빠던 안하냐?"고 아주 무례한 질문을 해서 우물쭈물 했다던데, 저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상대를 직접 자극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저는 그게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한국의 야구인들도 대개 그렇게 봅니다. 제 팬들도 무지 좋아해요^^ 대만이나 일본에서도 어느 정도 던지고, 도미니카에서는 아주 신나게 던지더군요. 국제대회라도 공통의 문화(불문율)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역사와 배경이 다른 나라의 야구문화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은 자제해 주세요~ 물론 저는 내년에 메이저리그 진출 예정인데요. 메이저리거로서는 리그 전통을 존중해서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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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물대포 사용 불허 결정>



영국이 물대포 사용을 불허했다는 기사가 있길래 자료를 추가로 조사해봤습니다. - 기사 링크


간단하게 요약하면,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자치경찰제를 시행 중인 런던의 치안 책임자)이 물대포를 구입해서 내무부에 사용신청을 했으나, 테레사 메이 장관이 조사 결과 위험성이 발견되었고, 영국의 경찰 전통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불허했다는 겁니다. 두 사람은 모두 보수당소속입니다. 주목할 점은 1) 물대포 사용 승인을 위해 충분한 의학적/과학적 조사를 한 결과 67개의 문제점을 발견했다는 것, 그리고 2)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찰(policing by consent)’이라는 영국의 역사적인 경찰원칙의 전통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고 밝힌 것. , 과학적, 의학적 증거와 민주주의국가의 역사적, 정치적 원칙을 물대포 불허결정의 근거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사용하려고 했던 물대포는 독일산이고,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국산이라서, 성능 차이가 어느 정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도입 과정 등은 참조할만 할 것 같습니다.


1. 가디언 기사 (2015723) - 링크 (2015715) - 링크

영국 내무장관 테레사 메이는 지난 7월 물대포(water cannon)의 사용을 불허. 경찰의 정당성과 경찰원칙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고 본 것. 철저한 의학적, 과학적 실험을 해본 결과 67가지 문제점이 지적되었고, 그것이 수정된다고 해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함. 물대포 척추 골절 등 심각한 신체 손상을 가져올 수 있고, 재빠르게 이동하는 시위자들에게도 유용하지 않으며, 특히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찰(policing by consent)’이라는 영국의 경찰전통에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나는 물대포가 경찰의 정당성과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찰이라는 경찰원칙에 미칠 잠재적 충격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한다.”

의학적, 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물대포는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운영 사례도 명확하지 않으며,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찰이라는 영국의 역사적인 경찰원칙이 위태롭게 된다. 나는 물대포 사용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영국의 인권단체 Liberty 정책담당관의 코멘트:

 

물대포의 사용이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중요한 증거에 대해 귀를 기울인 것은 칭찬받을만 하다. 물대포는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찰이라는 원칙을 따르는 사회에서 설자리가 없다.”


* 물대포 불허를 설명하는 테레사 메이 영국 내무 장관의 의회 연설 동영상 링크



2. BBC 기사 (2015715) - 링크

테레사 메이는 조사결과 물대포가 치명적인 생명위해를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척추골절, 뇌진탕, 안구손상, 엉덩이 손상 등 직간접적인 의학적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음.



3. BBC 기사 (2014218) - 링크

물대포로 인해 실명한 독일인 Dietrich Wagner이 영국에서의 물대포 사용을 경고. 그의 증언:

 

얼굴에 펀치를 맞은 것 같았고, 뒤로 넘어졌다.” “(한동안 의식을 잃었고) 나는 몇 번이나 울부짖었다.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고 검은 것만 보였다. 나는 내 눈이 눈구멍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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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기사에 언급된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찰(policing by consent).” 표창원 교수 칼럼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 링크


1829년 최초의 근대 경찰을 창시한 로버트 필 경은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찰(policing by consent)’ 개념을 확립했다. 그가 제시한 9개 항의 경찰원칙은 지금까지 전 세계 경찰의 철학적 바탕이 되고 있다.

경찰은 군대의 폭압이나 엄한 법적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미연에 범죄와 무질서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경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힘은, 시민의 지지와 승인 및 존중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경찰에 대한 시민의 지지와 승인 및 존중을 확보한다는 것은, 법을 지키는 경찰의 업무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인 협력 확보를 의미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시민의 협력을 확보하는 만큼, 경찰 목적 달성을 위한 강제와 물리력 사용의 필요성이 감소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시민의 지지와 승인은 결코 여론에 영합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공정하고 결코 치우침 없는 법집행을 통해서 확보된다. 즉 절대적으로 중립적인 정책, 부나 사회적 지위 등 어떤 것에도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대우, 언제나 예의와 친절 및 건강한 유머를 견지하는 태도, 그리고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갖춰져 있는 경찰관의 모습 말이다. 경찰 물리력은 반드시 자발적 협력을 구하는 설득과 조언과 경고가 통하지 않을 때에만 사용해야 하며, 그때에도 필요최소한 정도에 그쳐야 한다. 언제나 경찰이 곧 시민이고 시민이 곧 경찰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경찰-시민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언제나 경찰은 법을 집행하는 역할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되며, 유무죄를 판단해 단죄하는 사법부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된다. 언제나 경찰의 효율성은 범죄와 무질서의 감소나 부재로 판단되는 것이지, 범죄나 무질서를 진압하는 가시적인 모습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9가지 원칙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은 경찰 옷을 입고 있지 않아도 진정한 경찰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경찰 옷을 입고 있더라도 경찰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참조2) 벨기에에서 시행된 물대포 훈련 현장 동영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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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율'에 대한 단상



홍성수

 

빈볼 때문에 갑론을박이 뜨겁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부분은 바로 불문율이다. (규칙)과 사회의 상호관계를 전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범에는 성문규범과 불문규범이 있다. 법에도 성문법과 불문법이 있고, 스포츠 경기에는 정식 규정집(rule book)에 규율되어 있고 강제력을 갖는 성문율’(written rules)과 그렇게 규정되어 있지 않은 불문율’(unwritten rules)이 있다. 불문율이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지, 미국에서는 야구의 불문율에 관한 단행본이 세 권이나 출간되어 있을 정도다. 이런 것들이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서 읽어보시길...^^

 

Paul Dickson, The Unwritten Rules of Baseball: The Etiquette, Conventional Wisdom, and Axiomatic Codes of Our National Pastime, 2009.

Ross Bernstein and Rob Dibble, The Code: Baseball's Unwritten Rules and Its Ignore-at-Your-Own-Risk Code of Conduct, 2008.

Jason Turbow & Michael Duca, The Baseball Codes: Beanballs, Sign Stealing, and Bench-Clearing Brawls: The Unwritten Rules of America's Pastime, 2011.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불문율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먼저, 불문율은 역사와 전통에 의해 형성되고 또 그 구성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승인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수들이 모여서 “79회 점수 차가 큰 상황에서는 도루를 자제하자는 가이드라인을 정한다거나 (참고로, 선수협이 이런 합의를 했다는 기사에 대해 선수협은 공식 부인한 바 있음), 감독들이 모여서 불문율을 논의한다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정할거라면, 문서로서 정해서 성문화하고 벌칙규정도 명확하게 두는 것이 맞다.

 

그런 점에서 야구에서 이번에 황재균 선수의 도루 상황은 불문율을 어긴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상황에 대해 구성원들의 상식에 큰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 초반이라도 7점 정도 차이 나면 도루는 삼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요즘 같은 타고투저에 맞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이렇게 견해 차가 분명하게 있다면 그것은 불문율로서 자격미달이다. 불문율은 자연스럽게 구성원들이 승인하고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는 그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주 넉넉한 기준을 잡는다면 불문율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준, 예컨대, 8-9, 10점차 이상, 서로 주전선수 다 교체한 상황 정도라면 야구에 관계된 사람 중 절대 다수가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고, 이 정도라면 불문율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불문율은 시대에 따라 변동하며, 종목에 따라, 나라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야구라는 종목에 고유한 불문율도 있을 수 있지만, 특정 나라의 야구에만 존재하는 불문율도 있을 수 있다. 일본이나 미국의 야구에 어떤 불문율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답습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참고가 될 뿐이다. 우리 현실에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승인하면 그것이 불문율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 야구의 불문율 중에는 "실수로 사구를 던졌어도, 지나치게 사과하지 않는다" (A Pitcher can’t overly apologize if He accidentally hits batter)는 것이 있다고 한다 (위의 Paul Dickson 책 참조).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김성근 감독이 사구를 맞힌 후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한 선수를 질책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선배라도 필드에선 적인데 어떻게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선후배 관계로 얽힌 한국 야구의 현실에서는 유감 표시를 해야 한다”라고 반론하던데, 문제는 선후배이기 때문이 아니다. 선후배건 난생 처음 보는 상대선수건 자신의 실수에 의해 가해를 하게 되었을 때는 유감표시를 하는게 맞는거 아닐까? 배드민턴, 탁구, 테니스 등에서는 자신의 타구가 네트를 맞고 넘어가서 득점을 하게 되면 미안하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상대방은 괜찮다고 화답한다. 일종의 불문율이다. 다른 스포츠에서는 이렇게까지 하는데, 상대선수를 공으로 맞춰놓고 유감표시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거 아닌가? 선수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인데 말이다

 

이러한 미국식 불문율에도 불구하고, 어제 신용운 선수와 오늘 소사 선수는 사구를 던진 후 모자를 벗어 사과표시를 했다. 얼마나 보기 좋은가? 야구의 본질에 반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어제 오늘 경기는 사구가 나왔지만 부드럽게 잘 진행되었다. 만약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를 KBO에 영입하여, 한국 야구의 불문율에 대해 설명해준다고 가정해 보자. “한국 야구에서는 동업자 정신을 매우 중요시하기 때문에 빈볼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금지됩니다. 상대가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더라도 그것을 빈볼로서 대응하는 것은 더욱 비겁한 일로 간주됩니다. 이 점 명심해 주십시오 이렇게 설명해주는데, 그 선수가 이건 야구의 본질에 반합니다. 말도 안되는 불문율이네요. 반드시 빈볼로 보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반응할까? 아니면, 나름 합리적이네요. 저도 한국 야구의 전통에 따르겠습니다^^”라고 할까? 이런 문제에 관한 한 우리가 메이저리그 흉내를 낼 이유는 전혀 없다. 우리 생각에 맞는 우리 식의 관행을 형성해 나가면 될 일이다.

 

셋째, 불문율은 애매하기 때문에 불문율이다. 성문화되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하지만 불문율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불문율은 명료하지 않다. 배구에서는 블로킹에 성공하고 난 뒤 상대편 공격수를 향해 세레모니를 하면 안된다는 불문율이 있지만 도대체 여기서 금지되는 세레모니가 무슨 뜻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그 정도에 대한 합의가 있겠지만 말이다. 농구에서 크게 이기고 있을 때 작전 시간을 부르지 않는다는 불문율 역시 크게 이기고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지 않다. 물론 농구인들은 그 정도를 대략 알고 있을테다. 애매하지만 다들 알고 있는 그 무엇, 그것이 바로 불문율이다.

 

넷째, 불문율이 위반되었을 때 그것을 강행하는 방식은 공식 제재’(formal sanctions)가 아니라 비공식 제재’(informal sanctions)이다. 어떤 규칙을 어겼을 때 아웃이 되거나 퇴장을 당하거나, KBO에서 징계를 하는 것이 공식 제재라면, 비공식 제재는 사회적 압력에 의한 제재다. ‘비난하고 망신주기’(shaming and blaming)가 비공식 제재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예전에 허재 감독이 경기 후 악수를 하지 않고 코트를 떠난 적이 있었다. 불문율을 어긴 것이다. 공식 제재는 없었지만,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감독 개인이나 구단 차원에서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감히 이런 일을 벌이는 감독은 거의 없다. 처벌에 의해 강제되지 않지만 사회적 실효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건 불문율로서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허재 감독이 이를 어겼다고 해서 불문율로서 실효성이 없는게 아니다. 성문율 어기는 사람도 엄청 많다. 문제는 위반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실효성을 갖는지 여부다.

 

한편, 공식 제재와 비공식 제재의 중간에 있는 규범도 있다. 예컨대 구단 차원에서 또는 선수들끼리 자율적으로 어떤 행위에 대해 제재(예컨대 벌금)를 부과하는 것이다. 예전에 SK구단은 선수들이 사인과 사진 촬영을 거부할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내규를 만든 적이 있었는데, 이런 것은 공식 제재라고 보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비공식 제재도 아닌, 중간규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한가지 사례로, 야구에서 불문율을 어겼을 때 빈볼로 보복하는 것이 불문율일 수 있는지 살펴보자. 나는 이것이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본다. 불문율을 어겼을 때 사람을 향해 공을 집어던지는 것이 도대체 어떤 논리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야구에서는 경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잦은 투수 교체나 번트, 도루를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 불문율을 어겼다고 해서 그 제재 방법이 빈볼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비공식적인 제재가 아니라 직접적인 가해다. 엉덩이를 향해 던진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야구 좀 본다는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위험천만한 보복성 빈볼을 수없이 보지 않았는가? 사회인야구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100km 정도로 날라오는 공도 얼마나 위협적인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프로 선수들의 공은 대충 던져도 130km 이상의 속도가 나온다.

 

더욱이 한국프로야구에서 빈볼은 공식적인 제재를 받는다. 한국에서 빈볼은 불문율을 어긴 행위에 대해 성문율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보복하는 셈이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불문율에 대한 제재 역시 불문율다워야 한다. 나는 보복성 빈볼에 결단코 반대하지만, 큰 점수 차가 났을 때 상대를 자극하는 행위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해결은 야구장 밖에서 비판함으로써, 그런 감독이 더 이상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하게 사회적 압력의 수위를 높이는 것으로 해결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행위를 일삼아, 선수들 사이에서 신망을 잃고 구단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감독이 오래 버틸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불문율 위반에 대해서는 딱 그런 수준의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 나는 빈볼 보복에 관련해서 미국에서도 한다는 것 외에 그럴듯한 근거를 단 한 번도 들어본 바 없다. “빈볼도 야구의 일부다라는 식의 하나마나한 동어반복 말고 말이다.

 

세상은 성문율과 불문율로 규율된다. 이 두 규범이 적절하게 자기기능을 할 때 세상이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다. 세세한 법규범으로 사회를 규율하는 독일 같은 나라도 있지만, 헌법조차 불문법인 영국 같은 나라도 있다. 어떤 규범을 성문화하고, 어떤 규범을 불문율로 삼아 사회를 조정해나갈지는 그 공동체의 몫이다. 비단 야구와 스포츠의 예에만 적용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접근방법은 살짝 다르지만 제 생각과 거의 유사한 좋은 기사를 뒤늦게 발견하여 링크해 놓습니다. 첫번째 글에서는 불문율이라는 것이 어떤 맥락에서 형성되는 것인지를, 두번째 글에서는 불문율에 대한 복수(빈볼)가 왜 문제인지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박동희의 현장 속으로] 역전과 불문율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1361


[박동희의 MailBag] 불문율보다 중요한 건 동업자 보호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0990




 

Posted by transproms

왜 가혹행위의 피해자들은 자살에 이르거나 폭행으로 사망할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 말도 못하고 참고 있어야 했을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상관에게 보고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고충처리기구가 필요한 것이죠. 2011년 군인권 토론회 때 군 관련 고충처리기구의 현황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짧막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어요.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군사 옴부즈만 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내용인데 한번 정리해 봅니다. 2011년도에 조사한 것이니 감안해서 보시고요.


군 내부에도 인권침해를 호소할 고충처리기구가 많이 있습니다. 국방부에는 군인고충심사위원회(인사문제), 국방신고센터(구타, 가혹행위), 공익신고센터(부조리, 부패 등)가 있고요. 그리고 각 군 사단에 내부공익신고센터와 소원수리함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용 실적은 미미합니다. 국방신고센터의 경우, 매년 1,000건 안팎의 이용 실적이 있으나, 대부분 전역 후에 신고되는 것이고, 사단 급 내부공익신고센터는 연간 10건 미만 정도입니다 (*대통령실, “군 고충처리제도 개선방안”, 2006 참조)


군 외부에는 국민권익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에 군 관련 민원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권익위 고충처리국 산하 국방보훈민원과에서 매년 268건(2010년)의 군사 관련 진정을 접수하고 있고, 이를 담당하는 인력은 2명 정도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군 관련 사건을 연평균 100건 내외를 접수하고 있는데 담당 인력(조사관)은 실제로 1명이 채 안됩니다. (*이상은 업무 분장과 사건 건수를 참조하여 추산한 것)


장병 60만명이 상시적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 취약하죠. 게다가 실제 발생하는 사건 건수를 보면 접수되는 사건 건수가 너무 많습니다. 이른바 '숨은 범죄', '보고되지 않는 가혹행위'가 매우 많다는 것이죠. 군은 올해 실시한 자체 조사 결과 한 달 동안 가혹행위 가담자 3,900명을 적발했다고 합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수행한 군 인권실태 조사(2013)에 따르면, 8.5%가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남이 구타당한 것을 본 적이 있다는 병사도 17.7%에 달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지점은 가혹행위를 당한 후 86.8%가 ‘그냥 참았다’고 답했다는 점입니다.


자 이래도, 독일식 국방감독관 같은 독립적인 고충처리기구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발, 이제는 소원수리함을 부대 곳곳에 '꼼꼼하게' 설치하고, 대대장 휴대폰 번호를 화장실에 붙여 놓고 '마음 놓고' 신고하라는 식의 대응은 그만 하자고요. 그 진정성은 이해합니다만, 그렇게 해서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습니다.


군은 한번도 외부 통제기구를 제대로 경험해 본 바가 없습니다. 경찰, 검찰, 법원, 정보기관, 고충처리기구 ... 모두 군 내부에 두고 있는 것이죠. 외부의 고충처리기구가 가져올 충격에 대한 두려움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이걸 설치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인식해야 합니다. 외부 기구의 통제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외부 기구가 통제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권친화적 군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Posted by transproms

‘매뉴얼대로하면 죽을수도…’ 착해지지 마라. 매뉴얼대로 하면 목숨이 위태로운 끔찍한 아이러니, 현대문명이 가져온 안전의 사각지대 / 한겨레21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6954.html



역대 한겨레21 기사 중, 이렇게 동의하기 어려운 기사는 처음이네요. 신윤동욱 기자나 코멘트를 한 고미숙 선생, 이동연 선생은 모두 제가 참 좋아하는 분들이지만, 이 기사 만큼은 정말 동의하기 어렵네요. 취지를 선해해서 읽어도, 오해의 소지가 너무 많은 기사라고 보여집니다. 


매뉴얼대로 했다가 생명을 빼앗긴 것을 아이러니로 지적한 것 까지는 충분히 공감할만 합니다.  기사의 표현 그대로 정말, "끔찍한 아이러니"입니다. 하지만, 위기상황의 대안은 좋은 매뉴얼로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반복훈련해서, 위기 상황에서는 모든 사람이 안전책임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게 맞습니다. "질서와 훈육만 강조하는 매뉴얼"(이동연)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위기상황에서는 훈육받은대로 안전책임자의 지휘에 따라 질서있게 움직여야죠. 이건 근대적 훈육이나 자본주의적 훈육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절차가 복잡해지면서 우리가 그것을 시작한 이유인 근본은 없어져버렸다"(고미숙)고요? 이번 사건이 무슨 복잡한 매뉴얼에 따르다가 근본을 읽어버린 문제인가요?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은 선장과 선원들, 매뉴얼대로 점검하지 않은 배, 매뉴얼대로 펼쳐지지 않은 구명보트가 일차적인 문제죠. 매뉴얼 내용의 극히 일부인 "선장 지시에 따르라"는 것만 지켜졌고, 안타깝게도 그것이 참사를 부른 원인이 되었지만, 그것은 매뉴얼 내용 중 '문제'라고 지적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겁니다. 물론 "매뉴얼대로 해야한다"는 테제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끊임없이 고민해 봐야겠지만, 최소한 이번 세월호 사건이나 한국의 일반적인 안전불감증 문제를 놓고 이야기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차라리 신자유주의의 야만이 근본(인간존중)을 상실하게 했다고 한다면, 인문학적/사회과학적 비판으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겁니다. 그런 근본문제를 건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또한, 매뉴얼에 따르는 것을, “인간의 무의식적 야생성을 죽여버린 사회”(고미숙)라거나,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존중"(신윤동욱)의 문제로 보면서, 창의성이나 자율성과 대비시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창의력은 유연하면서도 잘 짜여진 매뉴얼을 만드는 과정에서, 또는 위기책임자가 예외적인 상황에서 매뉴얼에 없는 판단을 해야 할 때, 또는 안전책임자가 없는 고립된 (재난영화에 흔히 나오는) 상황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위기상황에서 일반인은 매뉴얼과 책임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죠. 그 위급한 상황에서,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이 자체 판단에 따라 "야생성"을 발휘하거나 "스스로의 판단"으로 각자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거야말로 끔찍한 일입니다. 위기상황에서 일반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구명조끼 입는 방법이나 산소호흡기 장착하는 방법을 잘 숙지해 놓고 있다가, 선장/기장이 지시를 내리면 재빨리 이행하는 것 뿐입니다. 육지가 아니라, 하늘이나 바다와 같이 일반인이 상황판단을 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운행되는 교통수단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매뉴얼과 안전책임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게 이번 사고의 또다른 큰 손실이고, 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지, "착해지지 마라",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잘 판단해라"가 대안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신뢰받는 안전책임자를 사회 곳곳에 배치하는 것, 이번에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것만이 대안이라고 봅니다.


이 문제에 관련해서는 박권일 선생이 공교롭게도 '한겨레신문' 지면에서 기고한 글이 있더군요. 더하고 뺄 것도 없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논점을 지시이행 여부로 좁혀버리는 이런 관점에는 두 가지 이유에서 동의하기 어렵다. 첫째, 사태의 인과관계를 뒤틀어 버린다.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직접적인 원인은 승객의 고분고분한 순응이 아니라 선장의 치명적인 판단 착오였다. 더 명확히 말하자면 ‘선장 지시를 따랐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은 게 아니라, ‘선장이 잘못된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죽었다. 둘째, 이런 관점은 자력구제를 승인하고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책임자의 지시에 순응하는 바람에 죽었다는 서사는, 풍자나 역설일지라도 결과적으로 ‘자력구제 하라’는 메시지를 정당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박과 항공기처럼 고립된 운송수단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지식과 경험을 지닌 운항 책임자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대체로 반대의 경우보다 생존 확률을 높인다. ‘세월호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박권일, 자력구제가 답인가?, 한겨레신문, 링크)


아울러,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을 예비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자본과 관료가 돈을 들일 아무런 동력이 없다”(고미숙)는 지적도 일면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쉽게 말해서, "사고 낸 기업은 망하도록" 시스템을 짜 놓으면 자본이 이윤추구를 위해 스스로 안전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이런 구조가 잘 갖춰지면, 관료가 어설프게 일일히 통제하는 것보다 자본은 스스로 더 지독하게 안전문제에 조심하게 되죠. 그런 자본의 속성도 이용해야 합니다. 실제로 안전선진국에서 기업들이 안전을 중시하는 것은 안전을 경시하는 것이 자본의 이익에 반하도록(엄청난 벌금이나 손해배상, 또는 사회적 비난으로 장사가 안되도록)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게 시스템을 짜 놓아도, 자본은 멍청하게 (즉 이윤추구에 역행하는데도) 사고를 냅니다. 그래서 자율규제에만 맡길 수는 없고, 국가의 강제적 규제도 필요한 것이고요. 이 두 가지가 잘 병행되어야죠. 안전문제에 관한 한, (이윤추구밖에 모르다가 사고를 내는 멍청한) 자본을 적절히 규제하는 것도 필요하고, (이윤추구를 위해 사고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합리적인) 자본의 속성을 적절히 잘 활용하는 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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