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눈으로 보면 결국 운이란 평등하고 공평한 것이다" - 보비 존스 (골프선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타고난 재능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 타이거 우즈 -


"특별한 비결은 없다. 타고난 재능도 있었고, 노력도 했고, 운도 좋았다. 여러가지가 합쳐져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 김연아 - 




출신배경, 신체적 조건, 재능 등 '운'(luck)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어떻게 하면 '정의롭고 평등하게' 조정할 수 있을까? 운과 불운의 문제는 존 롤즈(John Rawls) 등 정의론을 연구한 수많은 정치(법)철학자들의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운/불운이 제대로 통제되어야 '정의로운 분배'가 가능할 수 있을테니까요. 정치철학에서는 재능, 불운, 유산 등 운에 의한 요소들로 인해 불이익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이론을 '운 평등주의(luck egalitarianism)라고 부릅니다. 롤즈의 정의론이 불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던 정의론의 대가 드워킨(Ronald Dworkin)이 대표적인 운평등주의자이죠.


보통 보비 존스나 타이거 우즈의 말이 명언이라며 감동적인 것으로 칭송받곤 합니다. "그래 우리도 운을 탓하지 말고, 보비 존스나 타이거 우즈 처럼 열심히 한 번 해보자"는 의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죠. 수험생들 앞에 놓고 연설을 할 때 써먹으면 딱 좋겠죠? 하지만, 정치철학적으로 본다면, 김연아의 말이 훨씬 더 정의(?)롭고, 또 솔직한 답이라고 봅니다. 어떤 뛰어난 성취에 '운'의 요소는 분명히 있습니다. 타이거 우즈보다 골프를 못치는 선수들은 죄다 타이거 우즈만큼 노력을 안해서일까요? 타이거 우즈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는데도, 골프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는 없을까요? 김연아가  그나마 아이스링크가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고 스케이트를 타게 해준 부모님을 만나서 된 것은 김연아의 '노력'과 무관한 '운'일 뿐이겠죠. 그런 운이 없었다면 노력이고 뭐고 할 수조차 없었을 겁니다.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뛰어난 성취를 거둔 사람들이 자신의 성취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곱씹어 보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이죠. 이건 겸손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문제입니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배려'해서 그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 겸손함과, '정치철학적으로'(!) 나의 성공에 기여한 요소로, 재능과 운을 언급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죠. 김연아는 '타고난 재능'부터 먼저 언급하고, 그리고 나서야 '노력'을 얘기하고, '운'이라는 요소도 빼먹지 않습니다. 김연아가 그동안 사회봉사나 기부를 활발히 했던 것도 자신의 성공에 대한 그런 겸허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물론, 타이거 우즈도 자기 이름을 딴 재단도 있고 기부도 열심히 하고 그럽니다^^;;


개인적으로, 김연아의 올림픽 출전보다, 신인투수 한주성의 올시즌 활약 여부에 더 큰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만, 김연아의 이 인터뷰만큼은 약간 의미심장하게 들리는군요.


* 본문 내용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댓글 참조 (2015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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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형이상학적 찐따 2015.09.11 0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롤즈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고 계시네요. 롤즈는 운평등주의자가 아닙니다. 자연의 분배에 의한, 즉 운에 의한 불평등은 롤즈가 제시한 정의의 원칙이 규제하는 제도가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롤즈가 순전히 불운에 의해서 심각한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바람에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그래서 자유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하는 이들의 경우를 등한시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롤즈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하며 정상적인' 개인을 요청한다는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의 롤즈 비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transproms 2015.10.05 08: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운평등주의자인 드워킨은 롤즈의 정의론(차등원칙)이 소위 '불운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고, 또한 롤즈를 운평등주의자고 분류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회균등의 원칙을 좀 더 원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불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롤즈가 운평등주의의 비판에 무력하지 않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롤즈의 정의론이 불운 문제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유효하더라도, 롤즈의 정의론이 불운 문제에 무관심/무관하거나 불운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됩니다. 암튼 롤즈의 정의론이 불운 문제를 "고심했던 이론"이라는 정도가 제가 하려고 했던 말인데, 거기에 '운평등주의'라고 덧붙인 것은 제 오류입니다. 지적 감사하고 본문은 적절히 수정했습니다.




사진은 <법사회학> 강의자료의 일부입니다. '범죄와 형사정책'이라는 항목에서 저는 이런 내용을 다뤘습니다. 현대사회의 구조적 위험에 대해서 몇몇 개인에게 '중형'을 내림으로써 문제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삼풍백화점 사건,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 대형참사가 반복되지만, 항상 책임자 몇몇 처벌하고 그것으로 문제를 덮어 왔던 것이 아니었냐고 문제제기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이러한 대형참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른바 사법적 해결(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이 갖는 한계를 고민해보자고 호소했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위험을 막기 위한 궁극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2009년에 본격적으로 대학강의를 시작했으니 5년 동안 저는 이런 얘기를 해왔습니다. <법학개론> 시간에도 '형사법의 기본원리'라는 항목에서 간략하게나마 이 내용을 다룹니다. 


위의 얘기는 제가 무척 자신있게 강의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나라와 해외의 여러 사례와 이론을  활용해서 꽤나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현대사회의 구조적 위험에 대한 사회(철학)적 접근, 강성형벌정책 비판, 사형제도 반대 등과 연관되어 있는 저의 학문적 성찰의 일관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대형참사를 또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연구하고 강의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이런 강의를 해서 도대체 무엇에 써먹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무한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살아왔지만, 요즘처럼 무기력하고 자괴감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수업 때 다룬 이 내용이 생각나서, 강의자료를 꺼내 들고 읽어 보는데,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 엉엉 울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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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n 2014.04.24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해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누군가 말한 것처럼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서... 정말 망연자실 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벌어졌던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이
    제가 배워오고 믿어 온 것들은 모조리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만 같아서
    어느 순간, 내가 잘못 된 사람인가... 내가 '틀린' 사람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래도 믿고 기다릴겁니다
    사람들을 믿고 교육을 믿고 제 자신을 믿을거에요
    비록 평범하고 겁 많고 미래도 불투명하지만
    교수님께 배워 온 것들 깊이 새기고 끝까지 믿을거에요


    껍데기는 가라 했던 그 껍데기
    알맹이가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아는 게 없어서 그 속에 존재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어도..
    껍데기가 뭔지는 알 것 같습니다...




    • transproms 2014.04.25 0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번에는 다들 상실감도 크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면 안된다는 마음도 다들 단단히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정말 뭐가 문제였는지 하나하나 따져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죠. 우리 모두를 믿고 한 걸음 한걸음.. 그렇게...

이번 주는 첫 주라서 강의 소개를 하면서 워밍업을 했는데, 잠깐 짬을 내서 EBS 다큐프라임,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5부: 말문을 터라>의 일부를 함께 봤습니다. 왜 한국인들은 질문하지 않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질문기회를 줘도 질문하지 않는 기자들의 에피소드에서 시작해서, 강의실에서 질문하지 않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뒷부분에는 미국의 세인트존스칼리지 얘기도 나옵니다. 


세인트존스칼리지는 제가 틈만나면 "한국의 대학 중 몇 개는 저런 쪽으로 발전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던 곳이죠. 고전 100권이 커리큘럼의 전부인 대학. 서열을 매길 수 없는 대학. 왜 좋은지 아는 사람만 아는 대학. "비교적 좋은 대학"(중앙일보 순위가 높은 대학)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 아니라, "비교가 불가능한 좋은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는게 제 생각인데..... 그런 대학을 만들려면 학생과 교수가 합심해서 진정한 '공부'를 하는 대학을 만들어야 하겠죠. 세인트존스칼리지는 좋은 모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그런 대학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깨닫는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지금은 제 수업에서라도 그런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먼 미래에 뜻있는 사람들과 그런 대학을 '창학'하게될 기회가 있으면 꼭 해보고 싶습니다. 


여튼, 이번 수업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1) 읽기자료는 반드시 미리 읽고 와야 한다.

2) 수업시간에 말을 해야 한다.


특히 (수업시간에 유난히 말할 기회가 없는) 법대 학생들에게는 너무 큰 변화일 수 있기에 읽기자료의 분량도 적고, 말을 해야 하는 시간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조정했고요. 학생들은 1차 자료를 미리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수업시간에 들어와서 교수가 정해진 답(?)을 설명해주는 것과 일단 자기 머리로 먼저 생각해보고 그것을 수업시간에 함께 토론해 가면서 길을 찾아가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스스로 생각한 것을 말해가야 생각이 정리되고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제가 작은 실험을 몇번 해본 결과로는, 학생들이 원래 질문을 안하는게 아니라, 질문할 여건을 안만들어주는 교수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 여건을 잘 마련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고요.


사실 우리가 사회에서 부딪히는 상황이 이러한 수업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교수 같은 이들이 나와서 고주알미주알 설명을 해주고 그것을 이해하면 되는 상황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개는 이렇게 대뜸 낯선 읽기자료가 던져지고 스스로 또는 동료들과 함께 토론해가며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상황이죠.


* EBS 다큐가 마침 저의 그런 생각과 비슷한 내용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수업시간에 함께 보고 시작했습니다. 링크는 일부를 캡처한 것이고요. 전편은 유료로 볼 수 있으니 EBS 홈페이지에 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ebs.co.kr/replay/show?prodId=348&lectId=10186274&inKoost=Y

핵심만 보시려면 이 블로그에서 보셔도 됩니다.

http://blog.naver.com/smsm4321?Redirect=Log&logNo=30184316660


** 예전에 유학을 갔을 때 기억이 납니다. 수업에 들어갔더니 학생들이 질문을 엄청나게 하더군요. 저는 학생들이 다 천재인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영어가 잘 안들렸거든요. 근데 나중에 영어가 좀 들리고 나니까... 그 질문들의 수준이 그닥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정도 수준의 질문도 과감하게 던지고, 또 교수는 귀찮아 하지 않고 그것에 하나하나 답을 해가면서 함께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 수업방식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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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pinu 2014.03.30 1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보시니 어떻든가요? 학생들의 변화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

결론적으로는 당연히 이번 삼성의 조치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뭐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뭔가 생산적인 결론으로 나아가려면, “오만한 삼성이 이런 일까지 하네” 정도의 비난을 넘어서서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짚어봐야 할 겁니다. 아래 내용은 그것을 위한 생각의 단초들입니다.



1. 삼성이 대학 서열화 조장,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삼성이 대학 서열화를 조장했다는데, 팩트부터 챙기자면, 삼성이 대학별 추천인원을 정해서 언론에 공표한 것은 아닙니다. 대학별로 추천인원을 각각의 대학에 각각 통보했는데, 누군가가(아마 언론?) 대학별로 일일히 전화를 해서 추천 인원을 취합해서 공개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모아 놓고 나니까 문제가 커진 것이죠. 추측컨데, 삼성에서는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서열화는 단순한 서열화가 아닙니다. 한마디만 여쭙죠. 삼성이 정한 대학 서열이 일반적인 대학 서열보다 더 심한 서열인가요? 서울대와 비서울대, SKY와 비SKY, 수도권대와 비수도권 대학 간의 격차가 이렇게 좁은 대학 서열 혹시 보셨나요? 삼성이 미리 숫자를 정해놓고 사전에 공표한 셈이 되었으니 이렇게 문제가 되는 것이지, 만약, 이미 채용된 삼성의 신입사원의 출신대학 비율이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거였다면 어땠을까요? “삼성은 대기업 중에서는 가장 ‘덜’ 서열화된 신입사원 채용 정책을 갖고 있다”, “지방대나 비명문대에 대한 차별이 가장 ‘덜’한 기업이다” 이런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어라, 생각보다 여러 대학 출신자들을 골고루 뽑고 있네”라고 생각한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대학 서열화 자체를 다 반대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다른 거의 모든 기업들에 제기하는 의혹인) 신입사원 선발이 결과적으로 서열화되는 것은 상관없는데, (이번 삼성처럼) 서열을 사전에 정해 놓으면 안된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삼성의 서열화가 다른 기업들에 비해 특별히 과도하거나 이상해서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인가요? 



2. 총장추천제는 황당한 발상인가?

삼성 측에 따르면, SSAT시험/삼성입사가 고시처럼 되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온 안이라고 해요.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좋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대학의 추천권을 존중하겠다는 발상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대학은 고등학교 교사들의 평가를 믿고, 기업은 대학 교수들의 평가를 믿어야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물론 교육이 정상화되어야 교사/교수들의 평가를 믿을 수 있을 것이고요. 


그런데 삼성은 한국사회에서 총장추천제가 어떻게 실제로 운영될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을 안한 것 같습니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총장추천제가 합리적으로 운영될 가능성보다는 공정성 시비에 휩싸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봅니다. 총장이 어떤 기준으로 추천을 하건, 많은 공정성 시비가 있을 겁니다. 아직은 총장이 추천한 자가 우수한 학생이라는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누구누구 아들이라서 이번에 총장이 추천한거라던데?" 등등등.... 무슨 문제가 생길지 눈에 뻔히 보이시죠? 대학 관계자로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한국의 대학은 아직 이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안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건 삼성의 문제라기보다는 대학이 아직 많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총장추천제가 '잘 운영되는' 상황을 한번 그려 봅시다. 오히려 훌륭한 총장이라면 소신있게 교육하고 소신있게 추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총장이라면, 사고력이 뛰어나고 책을 많이 읽고 글쓰기 능력이 출중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하지만, 영어를 잘못하고 대학생활이 좀 꼬여서 학점도 별로 안좋고 심지어 엑셀도 돌릴 줄 모르고 스펙도 변변치 않은 학생을 추천하겠습니다. 삼성을 골탕 먹이려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정도라면 그깟 영어나 엑셀 정도는 자신들이 교육시킬 역량이 있으니까 (기업에서 저평가하지만 제가 보장하는) 이런 숨은 인재를 써 보라고 자신있게 권하려는 겁니다. 이 학생들이 당장은 기업에 별다른 도움이 안되도, 장기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학생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 같이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총장으로 있는 대학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현실성은 없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한국 대학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총장추천권이 강해지면, 총장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통제하기가 쉬워지겠죠. "삼성이 취업하기 싫으면, 대자보 붙이지 마세요" 이렇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총장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ㅠㅠ 이것이 대학의 현실인 이상, 총장추천제가 이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예상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총장추천제는 대학 인재상에 대한 주도권을 기업에게 완전히 빼앗기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대학에게도 자신이 생각하는 인재를 좋은 기업에 보낼 수 있고 대학이 생각하는 인재상을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기업이 대학을 지배하고 현실을 깨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대학과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일이죠. 그런 한계를 염두에 둔 상황에서, 총장추천제가 (잘 운영된다는 조건 하에서) 하나의 부분적인 대안 정도로서는 기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잘 운영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총장(학장) 추천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고,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문화적으로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어도 제도가 문화를 견인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으니 생각보다는 그 시기가 조금은 빨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종합하자면, 이 문제에 관련해서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총장추천제 자체에 반대하는 것인가요? 삼성의 총장추천제를 반대하는 것인가요? 대학별로 숫자를 임의로 정하는 방식의 총장추천제에 반대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총장추천제가 우리 대학현실에서 공정하게 기능할리 없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인가요?


* 참고로, 이번 총장추천제도 조금만 더 다듬었자면 그렇게 욕먹지 않았을 겁니다. 총장추천제로 신입사원 전원을 뽑는게 아니었고, 어차피 신입사원의 ‘일부’를 총장추천으로 뽑는다는 거였다면, 과감하게 모든 대학에서 총장 추천으로 ‘졸업생 숫자 비율’에 맞춰서, 똑같은 비율로 선발하겠다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신입사원 전체를 그렇게 뽑을 수는 없겠지만, 일부라도 그렇게 뽑는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발상이라고 봅니다. 총장 추천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남겠지만, 저는 이렇게 갔다면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3.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환기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이번에 실시하려고 했던 총장 추천제는 결과적으로 나쁜 제도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삼성에게는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삼성이 삼성 입사 제도 자체가 이렇게 큰 사회적 논란이 된다는 점 자체를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CSR)에서는 기업이 채용절차를 공정하게 운영할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사기업이 내가 일 시킬 사람 내가 뽑는데 뭔 상관이야?” 이런 말이 안 통한다는 세상이 왔다는 것이죠. 사회에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그 책임을 더욱 무겁게 느껴야 합니다. 이제 삼성은 자신들의 '사익'에 부합하는 인재를 뽑을 생각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에 걸맞는 신입사원 채용제도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대학에서는 기회균등선발도 하고, 지역인재균형선발, 소수자할당제도 하고...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부족하지만 나름의 노력을 하잖아요. 이제는 대기업도 예외가 될 수 없고 비슷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해외 유수기업의 사회적 책임 보고서(CSR Report)의 첫 장(chapter)은 보통 종업원의 구성(profile)입니다. 환경, 소비자, 협력/하청업체 노동자, 지역사회 등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죠. 보통 그래프로 깔끔하게 표시해주기도 하는데, 남녀 비율은 기본이고, 노동자와 임원은 보통 따로 계산합니다. 뽑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승진을 안시키면 말짱 도루묵이니까요. 장애인 비율을 공개하기도 하고요. 성소수자 비율을 공개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종업원 구성이 ‘평등’이라는 가치에 얼마나 부합하는지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출발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대학 서열화 문제가 심각하니까, 신입사원 출신대학비율, 임원 출신대학 비율을 공개해야 할 겁니다. 책임은 '공개'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점을 여기에서 확인해 둡니다. 이런 사례도 있어요. 한국IBM은 신입사원 채용에서 성소수자에게 가산점도 준다고 하죠. 우리는 이런 식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나서는 기업 또 없나요? 참고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장애인 의무고용 인원의 59%만 고용하여 62억원을 부담금으로 때운 기업(부담금 액수 1위)입니다. 삼성 입장에서는, 최소한 이번 기회에 ‘한국 사회의 대학 서열화와 삼성의 책임’에 대해서는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라건데, 이런 생각들이 이어져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특히 대학 서열화 문제와 관련하여) 다시 한 번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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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아크로폴리스가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아크로폴리스는 도시의 가장 높은 지역이란 의미이며, 신을 모시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고 종교축제가 열리던 신성한 곳이죠. 서양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도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서울시청앞 광장이 한국의 ‘아크로폴리스’가 되고 있다" (경향신문) 

-> 서울광장이 신을 모시는 성스러운 언덕이 되었다고요?


"(아크로폴리스 직원 파업으로 아크로폴리스 정문이 봉쇄되자) 그리스의 주수입원이 관광업인데다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이번 파업에 강력히 대응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민주주의의 상징이라서 파업에 강력히 대응한 것은 아닐겁니다.


"신(新)아크로폴리스 - 젊은 리더를 위한 민주시민강좌" (동아일보) 

-> 민주시민 강좌가 아니라, 서양문명사 강좌나 그리스 신화 강좌라면 적당한 제목이었을 듯 하네요.


그런 점에서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은 엉뚱한 작명입니다. 실제로 가보면 높은 곳도 아니고, 신전도 없고, 성스러운 곳도 아니고,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크로폴리스에서 이름을 따왔다면 더더욱 오류겠죠. 하지만 신문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네요..;;


"서울대에는 ‘아크로폴리스 광장’이 있다. 서울대 대학본부와 도서관 사이에 있는 이곳은 지난 7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자연스럽게 재학생들의 집회 장소로 자리잡았다. 고대 그리스 시대 직접민주주의가 이뤄졌던, 교류의 상징인 ‘아크로폴리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스포츠서울) 


"그리스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이름을 따온 이 광장은 서울대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재야단체 집회 등 굵직한 시국 관련 행사의 주무대였다." (한국일보) 


민주주의의 요람이라면, 아크로폴리스보다는, 민회가 열렸던 '프닉스 언덕'이나 공공활동의 중심지이자, 토론의 장이고 시장구실도 했던 '아고라'가 어울립니다. 소크라테스, 소피스트, 사도바울이 논쟁하던 곳도 바로 아고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터젯의 저잣거리 구실을 하는 '다음 아고라'나 파주 헤이리의 정치박물관 '아고라'는 작명센스가 괜찮았던 겁니다 ㅎㅎ


실제 사진을 보시죠. 




아크로폴리스는 이렇게 도시 한 가운데에 솟아 높은 언덕입니다. 평평한 언덕 위에 그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이 있습니다. 고대그리스 폴리스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있고 거기에 신전을 세웠는데, 폴리스 중 하나인 테네는 '파르테논 신전'에 아테니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모셨습니다. 좁은 의미의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뜻합니다. 여하튼 상식적으로도 저 높은 곳에 기어올라가서 무슨 논쟁을 하고 토론을 하겠어요...^^;;


아래 사진이 파르테논 신전을 가까이서 본 것입니다.




유네스코의 상징도 파르테논 신전에서 따 왔죠. 가까이서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건축물을 당시에 지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합니다. 건축물에 얽힌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보면, 이건 거의 '불가사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더라고요. 상단의 장식물이 파괴되어 있는데, 영국에서 뜯어간 겁니다. 브리티시 뮤지엄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반면, '아고라'는 아래 사진처럼 이렇게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장면입니다.




시장바닥이었으니 신전 같은 멋진 건축물이 없는 것은 당연하죠. 여기서 아테네인들은 토론도 하고 시장도 열고, 공공시설도 있던 곳이죠.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면 바로 이곳입니다.


아래 사진은 아고라에 내려가 찍은 사진입니다. 지금은 저렇게 흔적만 대충 남아 있습니다. 



2010년 제가 그리스 아고라를 직접 방문했었는데, 기원전 5세기 때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현혹시키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저러다가 사형을 당했다는 ㅠㅠ (*사진 위쪽의 언덕이 아크로폴리스고요. 파르테논 신전이 아주 작게 보입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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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샌디 2013.12.06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헝 교수님 너무 귀여우세요!!!♡♡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대학 1학년 때 교양국어 시험을 보는데, 이런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다음을 순서에 맞게 적절히 註를 다시오 
- 민법총칙, 1992, 박영사, 곽윤직


교양국어 시간에 주석다는 법을 배웠는데, 그게 시험으로 출제된 것이죠. 그런데 시험 끝나고 제 친구 하나가 시험문제가 정말 황당하다면서 씩씩거리고 있더라고요. 이유인 즉슨 ...

안타깝게도 친구는 註(주)를 詩(시)라고 읽은 겁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시를 한 수 지으라는 문제인줄 알고 이렇게 시를 짓고 나온거죠.


민법총칙이 춤을 추네
1992년 그 때가 떠오르네
박영사는 어디 있나 
곽윤직이 길을 묻네


민법총칙, 박영사 ... 이런 걸로 시를 지으려고 했으니, 셤 문제가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ㅠㅠ 

* 교양국어니까 시를 짓는 문제는 이상한 것은 아니겠죠. 참고로 이 친구는 수업은 모두 결석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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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학 때 그동안 쓰던 가구를 교체했는데,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었네요. 그 중 하나가 '책상 높이'에 관한 것입니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하다보니, 적당한 책상높이에 대하여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목재의 세계와 인테리어의 세계에 대해서도 눈을 좀 뜨게 되었는데, 그거야 뭐 전문가가 워낙 많고, 좋은 블로그도 많아서 제가 굳이 글까지 쓸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책상 높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서, 제가 한번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책상 높이의 기준은 글쓰고 책읽을 때에 맞춰진 것
시판되는 책상 높이는 대개 73~75cm 입니다. 키가 아주 크거나 아주 작지 않는 한 대개 적당한 높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높이는 책상에서 글씨를 쓰거나 책을 읽을 때를 기준으로 적당한 높이라는 것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죠.




사진1 (출처 링크)




이 사진에서 보면 팔꿈치 높이보다 책상 높이가 다소 높은데요. 73~75cm의 책상높이라면 대개 저런 모습이 됩니다. 키가 보통인 경우라면 말이죠. 그래서 표준 책상 높이가 그렇게 설정된 것입니다. 



현대인은 책상에서 키보드 작업을 주로 한다는 것이 문제


그런데 문제는 요즘은 책상에서 글씨를 쓰거나 책을 읽기보다는 키보드를 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다들 그러시지 않은가요? 저만 해도 책상 위에서 하는 작업 중 70% 이상이 키보드를 치는 것입니다. 키보드를 칠 때는 팔꿈치 각도가 90가 되어야 팔을 편안하게 키보드에 내릴려 놓을 수 있어서 가장 편한 자세가 된다고 합니다. 다음 그림을 보시죠.



사진2 (출처 링크) 



팔꿈치 각도를 90도로 맞추기 위해, 위의 사진처럼 키보드 트레이를 설치해두거나, 아니면 아예 책상높이를 낮게 조절해야 합니다. 실제로, PC 전용 책상의 높이가 대개 그렇게 되어 있고,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도 키보드 높이를 60-70cm 정도로 맞추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링크).



책상 높이가 조절되면 좋으련만....


문제는 현대인들은 책상 위에서 책도 읽고 메모도 하고 키보드도 치기 때문에 적절한 책상 높이를 설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필요에 따라 높이가 자유자래로 조절되면 좋을텐데, 그런 책상이 있긴해도 수시로 조절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큰 책상은 기술적으로 높이조절장치를 달기가 어렵다고 하고요. 과학기술이 이렇게 발달했는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하튼 가구업체들이 현대인들이 주로 책상에서 컴퓨터 작업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책상을 제작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의자는 인체공학기술을 적용했니 뭐니 하면서 꽤나 신경써서 만들던데, 책상 높이의 문제는 너무 소홀히 다루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사무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사무실에서는 대부분 일반 사무책상(높이 73-75cm)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니,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권고기준(키보드 높이 60-70cm)에는 맞지 않는 셈입니다. 요즘 사무직 노동자들은 대부분의 업무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무직 노동자 중에서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는데, 책상 높이도 원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여하튼 책상에서 일할 때 뭔가 불편하다 싶으신 분들 중에 키보드 작업을 위주로 하신다면 책상 높이를 좀 낮춰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책상을 바꾸기 어렵다면, 키보드 작업 시 가능한 한 몸을 세워서 작업을 하시면 좋을 겁니다. 물론, 아무리 그렇게 해도 책상 높이가 73cm 이상이라면 팔꿈치가 직각이 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물론 장신이거나 앉은 키가 유난히 크신 분들은 예외!! 키보드 작업은 별도의 PC전용책상에서 하는 것도 좋겠고요. 그것도 아니라면 기존 책상에 부착하는 '키보드 트레이'를 사용해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기존 책상을 컴퓨터전용책상처럼 만드는 것인데, 아래 그림과 같은 모양의 트레이를 기존 책상의 하단부에 장착하는 겁니다. 기존 책상에 나사를 박아서 부착해야한다는 점이 약간 부담스럽긴 합니다.



사진3 (출처 링크)


키보드 트레이는 키보드와 모니터와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고, 또 책이나 서류를 옆에 두고 쓰기도 불편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 점을 보완하려면 아래 그림과 같은 스타일도 괜찮아 보여요. 다만, 상판이 좀 더 넓직하면 좋겠네요.



사진4 (출처 링크) 



하여간, 저는 이번에 책상을 주문하면서, 71cm로 맞췄습니다. 아무래도 키보드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존 책상에 비해 1~4cm 정도 낮췄는데, 그렇다고 너무 낮추면 책읽기에 불편하니까 나름대로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뭘 해도 불편한 높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책상과 식탁 높이 등에 대해서는 일룸가구에서 작성한 자료를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겁니다 (링크). 참고로 일룸가구의 높이기준은 다른 업체들하고 조금 다릅니다. 책상 높이 기준이 72cm로 타 업체보다 2-3cm 정도 낮고, 패밀리테이블 높이를 70cm로 맞추기도 하거든요. 암튼 일룸의 설명은 나름 설득력이 있습니다.




첨언: 모니터받침대의 중요성


책상 높이가 낮을수록 모니터받침대가 필요합니다. 대략 모니터 상단이 눈높이와 맞아야 하는데(모니터를 살짝 내려보는 분위기), 책상 높이가 73cm 이하면 모니터가 너무 아래 쪽에 배치될 거에요. 그런 점에서 위의 사진2는 키보드 높이는 좋은데, 모니터 높이가 너무 낮다는 문제가 있죠. 저 사진에 "컴퓨터 작업 올바른 자세"라는 제목을 붙이다니...ㅠㅠ 저렇게 하고 컴퓨터 작업하면 목에 큰 무리가 갑니다. 아주 높은 모니터 받침대가 필요해 보입니다.



첨언: 책상 높이의 변천


과거에는 책상 높이의 표준이 70cm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 제가 아버지가 쓰시던 책상을 가져다가 쓰고 있는데, 한 20년 쯤 된 책상입니다. 높이를 측정해보니, 71.5cm 입니다. 요즘 시판되는 책상의 표준 높이(73~75cm)는 한국인의 신체치수가 향상된 점을 감안되었을 겁니다. 근데 왜 현대인이 책상에서 주로 하는 일은 컴퓨터 작업이라는 점은 반영 안하냐고요!!!!



첨언: 적절한 식탁 높이는?


식탁 높이가 책상보다 낮아야 한다는 '책상우위설'과 높아야 한다는 '식탁우위설이 있습니다. (학설의 이름은 제가 세계최초로 작명한 것!) '책상우위설'에 따르면 팔꿈치가 직각이 되어야 식사하기가 편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상 높이에 비해 식탁높이가 낮춰서 팔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이에 따르면, 책상 75cm, 식탁 73cm가 표준이 됩니다. 팔의 편안함을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 '팔 중시설'이라고도 불립니다. 정반대로, 식탁 높이가 책상 높이보다 높아야 한다는 '식탁우위설'도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책상 73cm, 식탁 75cm가 표준이 됩니다. 식탁우위설의 입장은 한국음식을 먹을 때는 서양처럼 양손에 칼과 나이프를 쥐고 먹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팔꿈치가 직각일 필요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게다가 밥과 국을 먹을 때는 입과 식탁이 좀 더 가까운 것이 먹기에 편리하다고 하죠. 그래서 '입 중시설'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식탁높이가 2cm 더 높으면, 밥을 입에 넣는 시간을 0.3초 단축시킨다는 연구결과는 아직 없습니다^^;;


여하튼 시판되는 식탁 높이는 대개 72cm에서 75cm 정도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식탁 높이는 아무래도 큰 불편이 없더라고요. 책상에서처럼 식탁에서는 몇 시간씩 줄창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밥 먹는 자세가 안좋아서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시는 분들도 없을테고요. 심지어 높이가 80cm 가 넘는 식탁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식사하는게 유행이기도 하잖아요. 아일랜드식 식탁이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오래 앉아서 먹기에 편한 모양새는 아니죠. 여하튼 식탁 높이는 그닥 중요하지 않고요. 현대인에게 중요한 것은 책상 높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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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01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상 높이 너무 높습니다..

    뭣도 모르고 비싼것만 사놨는데

    쓰다보니 높아서 애물단지만 되버렸네요...

    판매업체도 물건 팔아버리면 그만이니깐 그런거 일절 설명안해주죠..

    ㅠㅠ

  2. 맞습니다. 2014.01.21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글을 쓰는데, 작업할 때 쓰는 책걸상을 구매해야 할 때는 줄자로 온몸의 치수를 정확히 잰 후, 제품 사이즈를 면밀히 살펴본 후에 구매를 한답니다. 허리를 기대고 몸에 힘을 뺀 상태에서의 책상 높이는 60~65센치가 가장 적당한 것 같더군요. 참고로 제 키는 174입니다.

  3. 윤성호 2014.10.26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상을 조절할 수 없다면 의자를 조절하되 발이 뜨는 걸 대비하여 미용실 의자처럼 발거치대가 있는 의자를 사요하면 팔꿈치도 90도가되고 무릎도 90도가되어 사무노동자의
    편리함을 줄 수 있을것 같네여


혐오에 대한 규제와 표현의자유 포럼 자료집.pdf



첨부파일은 다음의 포럼 자리에서 배포된 자료집입니다.

제가 쓴 "표현의 자유의 한계 : 혐오발언 규제의 정당성과 방법"이 주발제였습니다.

토론용으로 되도록 많은 논점을 담아서 쓰긴 했는데 문장이나 논지가 아직 다듬어지진 않았습니다.

참고용으로만 활용해주시고, 인용은 상의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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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자유를위한연대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의 표현, 표현의 차별 : 혐오에 대한 규제와 표현의 자유


일시 | 2013년 7월 18일 (목) 오후 1~4시

장소 | 민주노총 교육원 15층 [약도보기]


최근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가시화되면서 

언론 광고나 온라인을 통해 소수자 혐오담론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소수자 혐오에 대한 사회적 규제의 필요성은 이제 막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한편, 어떤 표현도 사회적인 규제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통해

혐오와 차별 선동의 문제점이 감춰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혐오에 대한 사회적 규제방안과 함께, 

정치적 권리로서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 확장을 위한 조건을 모색해본다. 



사회 | 이호중 (표현의자유를위한연대 운영위원,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발제 || 표현의 자유의 한계 : 혐오발언 규제의 정당성과 방법

- 홍성수 (표현의자유를위한연대 운영위원,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토론 |

- 한가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위원회 변호사)

- 정혜실 (Transnational Asia Women's Network 대표)

- 몽 (언니네트워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

- 박선영 (문화연대 활동가)

-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 최지나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 



[문의] 인권운동사랑방 02-365-5369 | 언니네트워크 02-3141-9069 | 트위터 @ adactforall 

[후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표현의 자유 옹호 및 증진을 위한 공익변론기금」

[주최] 표현의자유를위한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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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학습론2: 어학연수를 가야 할까?


1편에 이어서 계속갑니다. 제가 상담을 하면서 아주 자주 듣는 질문이 이겁니다.


“어학연수를 가야 하나요?”

“이번 겨울방학에 영어학원 다니려고 해요?”


제가 우리 학교에 온지 이제 5년차 들어가는데요. 볼 때 마다 안타까운 장면이 있었으니,


1) ‘휴학’씩이나 하고 어학연수를 갔는데 별 소득 없이 돌아오는 학생들

2) 방학 때만 되면 영어학원을 왔다리 갔다리 하는데 영어실력은 그대로인 학생들


정말 안타깝습니다. 어학연수 비용이 얼마나 비싸요? 또 방학이나 휴학을 해서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기회비용을 생각하면...ㅠㅠ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 이유를 짧게 분석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1편에서 영어학습에서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일정한 ‘시간’ 투자 없이는 언어실력이 늘 수 없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어학연수나 영어학원을 다녀도 영어가 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학연수 가고 영어학원을 다녀도 영어학습량이 그다지 많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학연수의 현실

자, 어학연수부터 따져 봅시다. 어학연수 가면 하루 종일 영어공부만 하다 오는 줄 아시는 분들도 있는데, 천만에요. 어학연수 가봐야, 하루에 수업시간이 3~4시간 정도 됩니다. 이거 그렇게 많은 시간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영어학원 종합반 다녀도 하루에 강의시간이 3~4시간이잖아요. 그렇다면 어학연수학원에서 뭔가 대단한 비법을 가르쳐주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어학연수학원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의 여러 학원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괜찮은 곳은 괜찮고 별로인 곳은 별로입니다. 어학연수학원에서 쓰는 교재도 한국에서도 다 쓰는 교재고요. 선생님들도 한국의 영어학원 선생님들보다 특별히 더 낫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도 좋은 원어민 선생님들이 계신 학원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요컨대, ‘어학연수학원’이란 한국의 영어학원이 영어권 나라에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지어 더 후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수업 시간 내내 원어민 선생님과 1:1로 대화를 하는게 아니죠. 선생님이 샬라샬라 설명해 주고 학생들끼리 대화를 하도록 시키기도 하죠. 영어 잘 하지도 못하는 학생들 끼리 되도 않은 얘기 주고받고... 수업 밀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또 출결관리가 허술한 학원도 많아요. 그러면 한 1-2개월 열심히 다니다가, 설렁설렁 나가는 학생도 생기죠. 반면에 한국에 있는 영어학원 중에 정말 타이트하게 출결관리, 복습관리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게 시키는 학원도 있잖아요.


외국친구를 사귈 수 있다?

어학연수를 가서 외국친구를 사귄다? 이것은 뭐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만, 어학연수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은 당연하게도 원어민이 아닙니다. 영어 네이티브가 어학연수학원을 다닐리 없잖아요....;; 결국 어학원 친구들은 영어를 잘 못하는 비영어권 학생들입니다. 영어를 잘하면 어학연수를 갔을 리가 업죠. 물론 그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되긴 합니다. 하지만, 대단한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한국친구들과 영어로만 대화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 정도의 메리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뻔뻔함과 자신감은 확실히 향상된다!

어학연수 갔다 와서 확실히 느는 것이 있습니다. “뻔뻔함”이 늘어납니다. 잘 안들려도 들은 척 하는 요령은 확실히 늘어나고, 문법도 다 틀린 말로 대충 말해도 상대방이 다 알아듣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바이벌 잉글리시’를 배우러 거기까지 비싼 돈 주고 간 것은 아닙니다. “자신감”도 늘어납니다. 외국생활이라는 것이 사실 별거 아닙니다. 어학연수룰 하면서 고생 좀 하면, 어느 나라에 가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영어를 잘 못해도 얼마든지 서바이벌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인생에 중요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걸 얻으려고 그 시간과 돈을 들여 어학연수를 갈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어학연수는 좋은 스펙?

그러면 어학연수가 좋은 스펙일 수 있을까요? 오래전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표적인 오버스펙이 바로 어학연수 경력입니다. 어학연수를 다녀왔다고 해서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채용기관에서도 너무 잘 압니다. 어학연수 경력은 거의 평가받지 못합니다. 더욱이 한학기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죠.


차라리 여행이 낫다

외국에서의 경험은 물론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휴학하고, 6개월 정도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학생이 있다면 대찬성입니다. 대개의 경우 그만큼의 투자가치가 있습니다. 최소한 어학연수보다 훨씬 나은 경험일 겁니다. 외국생활을 하며 시야를 넓히겠다는 목적이라면, 어학연수보다 여행을 가는 게 훨씬 낫습니다. 어학연수 가서 영어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시야도 넓히고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요? 글쎄요. 제가 볼 때는 두 마리 다 놓칠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그래도 어학연수를 가야하겠다면... : 어학연수 활용법

그래도 어학연수를 가야겠다면, 이렇게 해보시면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어학연수 학원 열심히 다니고, 그 외의 시간도 영어에 노출시키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고 적극적인 공부도 해야 한다는 겁니다.어학연수학원을 다니기로 했으면 열심히 다녀야죠. 선생님과도 빨리 친해지시고요. 집중해서 수업 듣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습도 철저히 하고요. 언어공부도 ‘휘발성’이 있어서 복습을 했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합니다.


학원 다녀 왔으면, 나머지 시간에도 현지 TV도 보고, 현지 라디오도 듣고 하면서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고,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받아쓰기도 해보고, 쉐도우 스피킹도 해보고, 혼자 벽 보고 중얼 거려 보기도 하고, 라이팅 연습도 해보고.... 그렇게 공부하는 겁니다. (근데 이렇게 열심히 혼자 공부 할 수 있으면 외국에 왜 나가죠? ^^;;)


한국말 하는 시간은 최대한 줄여야겠죠. 한국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절대 금물이고, 인터넷에서 한국 사이트 검색하는 것도 웬만하면 끊는 것이 좋겠고요. 스마트폰으로 카톡으로 한국친구들과 대화하는 것도 금물. 뭐 이렇게 할 수 있는 거 다 해봐야 합니다.


현지 원어민에게 1:1 교습을 받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한국 돈으로 대략 1~2만원 정도면 1시간 정도 공부시켜줄 원어민 (대학생도 좋음) 구하는 거 어렵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마 5만원은 줘야 할 거에요. 어학연수학원 선생님들도 알바를 뛰시곤 하는데, 아무래도 이분들은 교육자니까 양질의 개인지도를 해주시겠지만, 그만큼 시간당 페이는 더 비쌉니다. 어쨌든 어학연수학원에서 생각보다 자신의 말과 글을 원어민에게 맨투맨으로 교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으니, 1:1 교습도 생각해 보십시오.


대학부설 어학원이 좀 더 낫다

학원 중에는 대학부설 어학원이나 고급학원(비싼 곳)이 낫습니다. 이들 어학원에 아무래도 학생들 중에 어중이 떠중이가 없죠. 공부를 제대로 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아무래도 많고요. 선생님들도 좋은 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쌀수록 학원의 질이 좋다는 것은 시장원리상 당연한 것인데, 사실 현지에 가기 전에는 그걸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학원이 별로 마음에 안들 때는 바로 환불받고 학원을 옮겨야 하는데, 그것이 용이한지도 알아보고 가시기 바랍니다. 게다가 비싸면 비쌀수록 효율은 떨어지겠죠? 한국에서도 저렴한 비용으로 알차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면 말이죠.


알바를 하면 좀 더 도움이 될까?

알바는 나라마다 정책이 다른데요. 영국처럼 ‘알바’가 가능한 나라에 갔다면, 일자리를 얻으면 아무래도 영어가 늘기에 좋은 환경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도 일 나름입니다. 맥도날드에서 비슷한 대화를 백날 해봐야 영어가 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복잡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일을 얻기는 힘들죠. 여하튼 알바를 하면 좀 더 낫긴 한데, 큰 기대를 하진 마십시오. 


말 나온 김에 워킹홀리데이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구하면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영어도 향상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잘못 걸리면 하루 종일 옥수수밭에서 ‘영어 한마디 안하고 묵묵히’ 옥수수만 따고, 저녁에는 너무 힘들어서 바로 잠들어 버리는 일상이 되풀이되기도 합니다.


원어민과 교류하라

원어민을 친해지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공원 가서, 산책 나온 어른신들한테 말 걸어보세요. 운 좋으면 2차 대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의 무용담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영어권 나라들은 대개 연금생활하는 어르신들이 공원에 많이 계십니다. 한국 학생이 말 걸어주면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방법이야 한국에서도 가능합니다. 다만, 어학연수 가면 좀 더 용이할 뿐입니다. 이왕 그 멀리까지 갔으면 이거라도 제대로 해봅시다.


요약

어학연수를 가면 한국에서 보다 영어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조금 더 좋아하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조금 더 좋은 환경’을 위해 황금 같은 시간과 거금을 투자하기에는 ‘가격 대비 성능비’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어학연수 가지 말라는 것이고, 그래도 가야겠다면 ‘가성비’를 극대화하기 위해 불굴의 의지로 최선을 다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학생에게는 다시, “그런 의지가 있다면 한국에서도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고 싶은거죠.


차라리, “나는 어쨌든 외국생활을 길게 한번 해보고 싶다”, “원어민은 아니더라도 외국친구를 사귀어 보고 싶다”, “한국에선 공부가 너무 안된다. 외국 나가서 공부하면 아무래도 환경이 유리하지 않겠나?” 뭐 이런 이유라면 경우에 따라 어학연수를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무조건 가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요. “어학연수가 과연 휴학까지 하면서 갈 가치가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10번 물어보고 그래도 가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하면 가십시오. 그리고 가게되면 제 말씀대로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오시고요.


부디 아까운 시간 잘 활용해서 알찬 대학생활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영어학원’에 대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세줄 요약

1. 어학연수 가면 공부여건이 조금 더 좋아지긴 한다.

2. 어학연수가 제공하는 여건을 잘 활용해서 열심히 영어공부하면 영어실력이 향상된다. 

3.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한 것은, 한국에서도 열심히 하면 똑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보충: 교환학생은 어떨까?

어학연수에 비하면 교환학생은 대체로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어학연수보다는 좋은 경력이 될거고요. 무엇보다 외국 나가서 현지학생들과 ‘정규수업’을 함께 듣는 것 자체가 어학연수보다는 훨씬 더 의미있는 경험입니다. 현지 대학생활도 제대로 체험해볼 수 있고요. 설렁설렁 다닐 수도 없죠. 학점을 따야 하니까, 귀 쫑긋 세우고 수업 들어야 하고, 시험공부도 해야 하고, 시험지 채우려면 라이팅도 열심히 연습해야 하고... 현지친구들에게 아쉬운 소리 해 가며 정보도 얻어야 하고, 교수 찾아가서 면담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어학연수보다는 ‘효용’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transpr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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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대 학생들을 위해 학교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참고삼아 블로그에도 옮겨 놓습니다.



영어 학습론 1: '닥치고 시간' 


 

저는 법학부 교수 홍성수입니다. 방학을 이용해서 영어공부에 대한 저의 몇 가지 체험과 정보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연재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만, 매주 조금씩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학생들하고 진로/진학 상담을 하다 보면 영어공부가 화두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좋건싫건 한국에서는 영어실력이 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고 있으니까요. 저는 영어실력이 이렇게 과잉대접받는 현실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언어를 하나라도 더 할 줄 안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언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사람의 삶이 더 풍요롭고 사유의 지평이 넓어진다는 얘기이기도 하거든요.

 

저의 조언은 아마도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전혀 없고, 이른바 영어 조기교육도 받지 못한 평범한 학생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딱 그랬거든요. 저는 영어 조기교육은 물론이고, 중고등학교 때 영어를 말하거나 들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대 후반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영어공부를 시작하는데 정말 막막하더군요. 영어공부를 한답시고 CNN를 들어봤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미국 대통령 이름만 들리는 수준이었습니다. 스피킹은 자기 소개를 1분 이상 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고요. 생각해 보니, 저는 서른 살이 다될 때까지 영어로 누군가와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편지나 이메일을 주고 받은 적도 없었고요.

 

저는 이런 상태에서 영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결국 필요한 토플점수를 받았고, 유학 가서 영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까지 영어실력을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영어공부에 대한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주변 사람들이나 지도학생들에게도 영어공부 컨설팅도 제법 많이 해봤고요. 좋은 효과를 거둔 적도 많습니다. (어제도 제가 알려준대로 4개월 동안 영어공부를 한 제자에게 영어실력 엄청 늘었다며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이런 경험을 함께 나눠 보려고 합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현재 영어실력은 그 때 그 시절의 저보다 훨씬 좋은 수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에서 출발하시는 겁니다.

 

영어 공부의 관건은 '시간'

오늘 할 얘기는 영어공부의 시간문제입니다. “교수님,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교수님 방학 때 마다 학원을 다녔는데, 영어 점수가 그대로에요제가 학생들로부터 아주 자주 듣는 얘기입니다. 저는 영어공부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 얘기도 나중에 해보려고 합니다만, ‘효율적인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공부 시간이라는 얘기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실제로 영어 때문에 고충을 털어 놓는 학생들의 대부분의 문제는 시간이지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일정한 영어공부시간을 확보하지 않고 영어실력을 늘이는 방법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물론 그 시간의 양에는 개인차가 있습니다만, 누구에게나 일정한 공부시간의 확보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럼 영어공부를 몇 시간이나 하면 되는가? 이건 정답이 없습니다. 영어학습 전문가들은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하려면, 대략 4,000시간에서 10,000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어공부의 목표가 원어민 수준이 되는 것은 대개 아닐테니, 좀 더 현실적인 목표 시간을 생각해 봐야겠죠. 정보기관에서 어떤 지역에 정보요원을 파견할 때, 대략 2,000시간 정도 언어교육을 시킨다고 합니다. 2,000시간 정도면 빨래집게 놓고 A자도 모르던정보요원이 그 나라 언어를 어느 정도 마스터하고 정보활동까지 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죠. 위에서 얘기한 4,000시간 ~ 10,000시간은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된 시간일 것이고요. 정보요원들은 아주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그보다는 짧은 2,000시간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어린 아이들을 초등학교 보내면 대략 6개월이면 적응 가능하다고 하지요. 하루 종일 영어를 접하는 환경에 노출된 채 6개월 정도 있으면 영어가 된다는 겁니다. 아이들이라서 그렇다고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를 잘 못하던 직원이 해외 근무를 가서 대략 1년 정도 영어로 일하게 되면, 업무에 지장없는 수준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고 하죠. 하루 8시간씩 주 5일 근무한다고 치고, 1년이면 대략 2,000시간이죠? 자 결론 하나 나왔습니다.

 

해외 업무에 지장이 없는 수준의 영어실력을 원하신다고요? 영어공부에 2,000시간을 투자하면 됩니다

 

목표 수준을 취업/진학에 어려움이 없는 수준으로 낮춰 봅시다. 그 정도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대략 2,000시간보다는 짧은 시간일 겁니다. 목표수준도 조금 낮고, 현재 영어 실력이 ABC도 모르는 수준은 아닐테니 말이죠. 그렇다면 대충 반으로 딱 잘라서 1,000시간이라고 칩시다. 어떤 학문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와 제 주변 학생들의 경험으로 추산해볼 때, 대략 1,000시간 영어공부에 투자하면, 영어 뉴스를 알아 듣고, 영어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취업/진학에 필요한 영어점수를 확보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취업이나 진학에 필요한 영어 실력을 원하신다고요? 무조건 영어공부에 1,000시간을 투자하십시오.”

 

목표치를 좀 낮출까요? 그냥 토익 점수 좀 받고 기초적인 의사소통만 하면 될 것 같다고요? 그렇다면 저는 최소 500시간을 영어에 투자해 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500시간 정도 투자하면, 토익 점수 기준으로는 200점 정도는 충분히 올릴 수 있습니다. 숙명여대에 입학할 정도의 학생이면 아무런 준비 없이 토익 시험을 봐도, 600-700점은 받을 겁니다. 200점만 올리면 대충 취업에 필요한 수준은 되는 거죠? 여하튼 영어공부는 닥치고 시간입니다.

 

시간 확보를 위해서는 단기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

근데 말이 500시간, 1,000시간이지, 이거 무지 어렵습니다. 하루에 영어공부 1시간씩 꾸준히 하는 것도 쉽지 않잖아요. 근데 하루에 1시간씩 주말까지 포함해서 영어공부를 1년 해도 365시간입니다. 이렇게 해도 500시간이 채 안되요 ㅠㅠ 이런 식으로는 공부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실력향상도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공부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방학을 이용하라고 얘기합니다. 하루 10시간 씩 방학 60일을 투자하면 600시간이잖아요. 물론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루 1시간씩 365일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하루 10시간씩 두 달 정도 공부하는 것이 시간도 많이 확보할 수 있고, 실천하기도 훨씬 쉽습니다. 대학 생활 중 방학이 7번이나 있잖아요. 그 중 딱 한 번만 영어에 집중 투자해 보십시오. 영어실력에 확실한 진전이 있을 겁니다. 자신의 영어실력이 많이 부족하다거나, 또는 자유자재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한다면, 휴학을 하고, 하루 8시간씩 6개월만 투자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1,500시간 정도 확보가 되잖아요. 그럼 게임 끝난 겁니다. 눈 딱 감고 이렇게 한번만 공부해 놓으면, 그 다음에는 감각 유지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게 평생 영어 실력이 되는 거에요. 이 정도 투자는 할 만 하지 않을까요?

 

단기간 집중 학습의 또 다른 장점

영어실력은 공부한 만큼 정비례해서 죽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래프로 표현을 하자면, 위의 그래프처럼 영어실력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아래 그림처럼 영어실력이 향상된다는 겁니다 (그림이 좀 엉망입니다제가 직접 그렸습니다^^;; 귀엽게 봐주시길.. ㅎㅎ)


위 그래프에서, A, B에 해당하는 기간이 문제입니다. 실력이 정체되는 기간이죠. 내공이 쌓이고 있지만 점수는 올라가지 안고 스스로도 실력이 향상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기간을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이른바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실력이 정체됩니다. 임계점에 도달하려면 대략 100시간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토익 LC 점수가 잘 나와서 LC part 1을 집중공략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공부를 시작했다고 가정하면, 대략 100시간 정도 공부했을 때 점수가 올라간다는 겁니다. 99시간 될 때까지는 1점도 오르지 않을 수도 있고요. 어떤 사람은 99시간까지 열심히 했는데, 점수가 오르지 않자, ‘난 영어하고는 인연이 아닌가봐하고 포기를 해버립니다. 1시간만 더 했으면 10점이 올라가는 것이었는데 말이죠. 포기하지 않고 100시간을 채워서 10점을 올렸으면, 다시 정체기가 시작됩니다. 200시간이 될 때까지 단 1점도 오르지 않습니다. 200시간이 되면 다시 10점이 올라갑니다. 이렇게 한층 한층 영어실력이 쌓입니다.

 

그런데 하루에 1시간 씩 꾸준히 한다고 해보세요. 3달 동안 실력향상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3달이나 꾸준히 했는데 말이죠. 너무 괴롭겠죠? 그런데 하루 10시간씩 하면, 10일이면 실력향상이 눈에 보입니다. 성취감이 훨씬 크겠죠? 그래서 집중해서 공부를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집중공부를 하게 되면 하루에 한국말 쓸 시간이 거의 없게 됩니다. 그렇게 안하면 하루 8~10시간 영어공부 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거든요. 쉬는 시간에는 영어 드라마를 보시고요. 일기도 영어로 쓰고요. 카톡 문자도 영어로 보내고요. 전화 오면, “헬로우~”하시고, 친구랑 약속 있어서 나가면 영어로만 말해야죠^^ 왕따 당하려나요? ㅎㅎ 실제로 영어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말을 쓰면서 동시에 영어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일정한 시간 동안 영어에만노출시키는 것이 두뇌에 영어가 자리잡는 데에도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여하간 집중적으로 영어에 투자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요약: 영어공부는 '닥치고 시간'

지금까지 말씀드린 구체적인 시간의 수치는 정확한 것도 아니고, 제가 영어전문가가 아니어서 구체적 수치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개인 차이도 있고, 공부방법에 따른 차이도 있고요. 여하간 정확한 시간에는 너무 구애받지 마시고요. 이것 하나만 확실히 기억해 두세요.

 

일정한 시간 확보 없이는 영어실력은 절대 늘지 않는다

 

여러분이 영어실력이 안 늘어 고민하고 있다면, 거의 대부분 일정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서입니다. 여러분들이 영어공부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어떻게 하면 일정한 시간을 확보할지부터 고민하십시오. 그리고 대학생은 이런 시간을 확보하기에 아주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직장생활하면서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대학에는 방학도 있고, 여차하면 휴학도 할 수 있잖아요. 그걸 이용하라는 겁니다. 너무 좋은 기회에요!


 



저는 어학연수를 간다고 하면 웬만하면 말립니다. 영어학원도 웬만하면 말립니다. 제가 말리는 이유는 지금까지 한 얘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절대 안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번에는 영어학원과 어학연수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해서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공부방법도 중요합니다. ‘시간이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해서 먼저 이 말씀을 드린 것이지 방법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기회 되는대로 영어공부방법에 대해서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영어공부를 하라고 조언해 줍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제가 여기에 다소 부정적인 이유는 그게 오히려 더 힘들다는 겁니다. 어차피 절대적인 시간 투자가 있어야 하는게 언어공부인데, 매일매일 조금씩 해서는 1) 절대적인 총 공부시간을 채우기 어렵고, 2) 수 개월 수년 동안 지속하기도 어렵고, 3) 성취감을 얻기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물론 본인 상황에 맞게 하면 되는 것이겠지만요. 위의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그 취지를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Posted by transpr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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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nsproms 2013.01.28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글이 언제가 될지 몰라서,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도 미리 말씀드리자면 .... 사실 방법은 별거 없습니다. 획기적 방법이 있으면 다들 이렇게 고생하고 있겠어요? ^^;; 걍 서점 가서 '영어학습론'이나 '영어정복기'에 관한 책들 주욱 훑어 보시고 '공통점' 추리시면 됩니다. 특히 순수국내파로 독학한 분들 조언에 귀를 기울여 보시길....

  2. 신의랑 2013.01.28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 저 요즘 토익공부하는데 이거 보니깐 갑자기 시간을 알차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

    • sungsooh@gmail.com 2013.01.30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절대적인 시간 투자 없이는 언어실력이 향상될 수가 없어요. 방학이니까 집중해서 공부시간을 많이 확보해보길 바랍니다.

  3. 123 2013.02.07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 안녕하세요 법학부 학생은 아니지만 항상 트위터로 좋은 글 많이 보고 있어서 왠지 학교에서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ㅎㅎ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올 해 휴학할 예정이라 영어 공부 열심히 해봐야겠어요^^

  4. mintmay 2013.03.11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 좋은 말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구체적 방법에 대한 힌트도 감사합니다.(_ _)

  5. 박군 2015.04.01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youtube같은 곳에서 아주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단기간에 언어를 터득했다는 사람들의 공부 시간을 계산해보니 하루 4시간만 자고 20시간씩 공부해서 6개월 걸렸다는 답이 나오더군요.. 대략 3600시간이 기본인 것 같고 스페인이었나 어느 나라 대학 교수가 진행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3000시간이 넘게 공부를 하지 않으면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_-

    • transproms 2015.04.15 2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정확한 시간이야 연구방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상당한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은 변함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