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절문제는 글쓰기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숙지되어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아래 글은 기본적으로 '학술적 글쓰기'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학생들 쓰는 숙제(에세이, 보고서 등등)는 물론이고, 블로그나 트위터에서 글을 쓸 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아래는 제가 학생들을 위해서 표절과 인용문제를 정리한 것입니다. 저학년 수업시간에는 첫 주에 이것을 강의하고 시작하곤 합니다. 


아래 내용은 제가 아는 저작권에 대한 지식과 학계/출판계의 관례를 기준으로 정리한 것이지만, 표절/인용문제는 명확한 법률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관례와 윤리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라, 저의 '의견'에 가까운 부분도 있다는 점을 참고해서 읽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실제로 관례와 윤리는 지속적으로 변화/발전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다른 의견 있는 분들은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도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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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을 위한

학술적 글쓰기에서의 표절문제와 인용방법



I. 표절의 유형


1. 내용 표절 (아이디어 표절)


원저자의 고유한 생각, 논리, 표현, 자료, 분석틀 모방하고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출처가 부정확한 경우를 말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사안에 부딪히면 판단하기 상당히 까다롭다. 어디까지가 고유한 생각인지가 것이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공식이나 이론이라면 정확히 인용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피카고라스 저서를 찾아서 페이지까지 인용할 필요는 없다물론 여기서도 어디까지를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어디까지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최종적 판단은 학계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내용표절을 할 때 표현까지 그대로 옮겨오는 경우에는 표절판정이 어렵지 않다. 지난 몇 년 동안 언론지상에 오르내린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의 표절은 대부분 내용표절과 표현표절이 동시에 이루어진 경우였다. 최소한의 성의교묘함도 없이 표현과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런 표절은 적발하기도 쉽고 판정하기도 쉽다해당 학문에 문외한이어도형광펜만 있으면 두 편의 논문을 비교해 가며 표절을 적발해 낼 수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표현만 바꿨을 뿐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진정한 의미의 '내용 표절'은 잡아내기 쉽지 않고, 또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아 결국 학계의 전문적 판단에 맡겨져야 할 것이다.


※ 일반적 지식의 인용

일반적인 지식을 진술할 때 특정 저작물을 인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칸트철학은 독일관념론이다'는 정도의 학계의 일반적인 진술은 굳이 인용할 필요가 없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은 아닐 것이다. 칸트철학이 독일관념론이라는 사실은 분명 다른 사람의 문헌을 통해서 후천적으로 알게 된 것일테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진술을 쓰면서 굳이 (칸트철학이 독일관념론임을 알게 해준) 특정문헌을 인용할 필요는 없다. 만약 "칸트철학은 독일관념론이다"라고 쓰면서, A라는 문헌을 인용한다면, 그 일반적 지식이 마치 A의 독창적인 생각인 것처럼 오인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칸트철학을 독일관념론이라고 규정한 중요한 문헌이 있다면 인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 칸트철학이 독일관념론이라고 적혀 있는 문헌은 한국에만 수천 건이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어떤 문헌을 인용하는 것은 유의미하고, 어떤 문헌을 인용하면 무가치한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바로 학문적 능력이기도 하다. 예컨대, "칸트철학은 독일관념론이다"는 진술을 인용할 때 'B의 석사학위논문'을 인용했다면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B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인 것으로 오인하게 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진술에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를 인용했다면 경우에 따라 유의미할 수 있다. 

이처럼, 일반적 지식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것은 해당 학계의 전문가가 판단해야할 문제다. 일반적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문헌을 인용했다면 그것은 '불필요한 인용', '바람직하지 않은 인용' 정도에 그치겠지만, 일반적인 지식이 아니라 특정 저자의 독창적인 지식인데도 (일반적 지식이라고 오인하고) 인용표시를 안했다면 그것은 '표절'이 된다. 따라서, 숙련되지 않은 연구자라면, "일반적 지식인지 아닌지 여부가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일단 인용한다"는 자세를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표절'이 되는 것보단, '바람직하지 않은 인용'을 하는 것이 실리면에서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인용이 많은 것도 논문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표현 표절 (텍스트 표절)


출처표시 없이 특정 문장을 그대로 옮겨온 경우나, 출처표시는 했지만 인용부호 없이 다른 저술의 문장을 원문 그대로 옮기는 경우를 말한다. 간혹 표절 시비가 제기되면, “논문의 핵심 내용은 아니라, 일부 문장을 베꼈을 뿐이다라고 변명을 하는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적절한 인용없이 남의 문장을 베끼면 표절이다. 타인의 연구성과의 내용도 함부로 베끼면 안되겠지만, 표현도 함부로 가져와서는 안된다. 오로지 정확한 인용과 인용부호를 사용하는 조건 하에서만, 내용이건 표현이건 옮겨올 수 있다. 


교육부의 논문표절 가이드라인 모형”(2008)에서는 여섯 단어가 연속해서 일치한 경우, “서울대학교 연구지침”(2008)에서는 두 문장이 연속해서 일치한 경우에 표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섯 단어또는 두 문장이 연속해서 일치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남의 글을 베낀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또한 출처표시를 하더라도 인용부호 없이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안된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려면, 인용부호로 묶거나 왼쪽여백을 줘서 원문임을 분명히 표시하거나, 아니면 표현을 완전히 바꿔줘야 한다. 전자를 직접 인용’, 후자를 간접 인용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래에서 다시 설명한다.


※ 참고: '양'에 의한 표절판단의 문제점

표절 여부를 판단할 때, 단어나 문장의 '양'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정한 분량의 문장이 일치했더라도 흔히 사용되는 뻔한 표현이라면 무조건 표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섯 단어'는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는 기준이라고 보여지며, 여섯 단어가 일치된 경우라고 할지라도 구체적인 맥락을 보고 표절인지 여부를 판단하는게 좋다고 본다. 서울대 지침처럼 '두 문장' 정도의 넉넉한(?) 기준이라면 문제의 소지가 좀 더 줄어든다. 어쨌거나 '여섯 단어' 또는 '두 문장'이라는 일정한 '양'의 중복이 있었다면, 일단 표절이 의심된다는 '신호'라고 봐야 하며, 그것이 표절인지 여부에 대한 최종판단은 해당분야 전문가가 해당 표현이 사용된 전후맥락을 면밀히 살핀 이후에 판정할 수 있을 것이다. 



3. 자기표절 (중복게재, 이중게재)


자기표절이란 본인이 저술한 출판물의 전체 또는 일부를 재활용하여 저술한 경우를 말한다. 표절은 남의 글이나 생각을 훔친다는 뜻인데, 자기가 자기 글을 훔친다는 것은 어색하다. 물론, '자기표절'(self-plagiarism)이라는 말이 쓰이긴 하지만, '중복게재', '이중게재', '자기 글의 재활용', '무리한 활용'(이준웅 교수 제안), "자신의 연구성과 사용"(서울대 연구윤리지침) 또는 "텍스트의 재활용" (고려대 교원연구윤리지침) 등이 부르는 것이 문제의 본질에 좀 더 부합하는 표현이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왜 자기 글을 재활용하는 것을 문제삼는지가 중요하다. '이유'가 명확해야 문제의 판단도 정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자신이 쓴 글을 스스로 재활용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출판사의 출판권을 침해할 수 있다. 한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으면 출판사가 보통 3년의 계약기간 동안 출판권을 갖게 되는데, 이 기간 중에 그 책의 저자가 책 내용을 다른 방법으로 출판하면 출판권을 침해하게 된다. 책 전체가 아니라 일부라면 개별적인 경우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할 것이다. 둘째, 업적이 중복계산될 수 있다. 교수가 대학에서 업적 평가를 받을 때 동일한 논문을 이곳저곳에 발표하여 중복하여 업적을 인정받아서는 안된다. 셋째, 편집자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출판사, 저널, 신문 등의) 편집자는 저자의 글이 처음 발표되는 글이라고 생각하고 게재한다. 그런데 만약 출판하려는 글이 이전에 다른 곳에서 발표가 되었던 글이라면, 편집자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 된다. 만약 처음 발표되는 글이 아니라면 편집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상의해야 한다하지만 이 세 가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자기 글을 재활용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과거의 자신의 글의 출처를 되도록 정확히 표시하는 것이 학문의 누적적 발전이나 독자들에 대한 정보제공 차원에서 바람직할 것이다.


한편 본인이 쓴 학술지 논문이나 신문 칼럼을 모아서 단행본으로 재출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관례적으로 별 문제가 없다. 다만, 저작권 관념이 엄격한 미국에서는 이 경우에도 해당 학술지 편집장이나 해당 신문에 양해를 얻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미국 출판물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양해를 구했음을 책에 표시하는 경우를 여러번 보았으나, 유럽출판물이나 한국출판물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다. 다만, 정보제공 차원에서 원출처는 적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 학위논문 재출간과 논문 일부의 중복게재 문제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이 글 말미에 다시 정리했음). 또한 보고서를 논문/저서로 재출간하거나, 논문을 비학술적 용도(대중적인 잡지나 소식지 등에 논문을 요약하여 소개하는 것 등)로 재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 경우에도 출처 표시는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고서나 비학술적 잡지는 대개 업적으로 계산되지 않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업적 중복계산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4. 기타 표절 문제


① 재인용 표절

원저자가 인용한 출처(2차 출처)를 인용하면서 2차 출처를 밝히지 않고, 1차 출처만 표시한 경우를 말한다그러니까재인용은 말 그대로 남이 인용한 것을 재인용하는 것이다이 때는 원저 출처와 재인용한 출처를 모두 명시해야 한다.


 과도한 분량의 인용

출처를 인용하긴 했지만, 너무 많은 분량을 그대로 옮겨와서는 안된다. 옮겨온 분량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에는 출처표시를 하고 인용부호까지 달았어도 문제가 된다는 얘기다. 너무 많이 옮겨올 경우 (출처표시를 했더라도) 남의 글이지 자기 글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타인의 논문을 거의 그대로 옮겨오면서 추임새만 넣어서 새로운 논문을 장성하는 것은 용인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지나치게 많은 분량일까? 그 지나침’의 정도에 대한 확고한 관례도 없고, 각종 연구윤리지침에도 특별한 규정이 없지만, 대략 한 단락 이상을 연속해서 그대로 옮겨올 때는 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만약 이보다 많은 분량을 옮겨오고 싶다면, 원저자의 양해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짧은 글이라도 글 전체(: 칼럼 한 편)을 그대로 옮겨오는 경우에는 양해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때 양해는 원저자와 원출판사(신문사)에 구해야 하고, 연락은 출판사가 해도 되고 저자가 직접 해도 무방하다. 이 때 그 양해의 내용은 명확해야 한다. 정확히 어느 부분을, 어떤 맥락에 옮겨다 놓는지, 그리고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지 아니면 일부 수정할 것인지 등등을 명확히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5. 학술논문 이외의 경우


학술논문 이외의 경우라고 해서 원칙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글의 성격에 따라서 조금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언론 칼럼이라면, 인용한 출처의 페이지는 생략하고 저자의 이름만 괄호 안에 넣고 인용해도 큰 문제는 없다. 칼럼 분량에서 정식인용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트위터 등 SNS도 언론칼럼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신문칼럼이건 트위터건,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옮길 때는 꼭 인용부호표시를 해서 내 표현이 아님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용부호(따옴표) 안에 들어간 타인의 말을 함부로 수정하면 안된다. 트위터에서는 RT 등 트위터에서 약속된 표시도 정확히 지켜줘야 한다. 반면 블로그의 경우에는 학술논문과 달리 생각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분량도 충분하고 편집상의 문제도 없기 때문에 원칙대로 인용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인용을 하더라도 저자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맥락으로 인용을 하면 곤란하다. 글이 놓여 있는 맥락에 따라, 글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서 지인들끼리 댓글로 주고받은 사적인 대화는 비록 그것이 공개된 상태라고 해도 신문기사화하는 것은 안된다고 본다. 굳이 하고 싶다면 양해를 구하는게 맞다. 트위터의 경우는 사적인 성격도 있고 공적인 성격도 있어 조금 애매하지만, 트윗글을 기사화할 때는 원칙적으로 저자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그 트윗글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해서 인용하는게 좋을 것이다.



II. 표절/인용 예제


표절과 인용 문제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다음의 원문을 놓고 어떻게 인용할 것인지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원문)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의 붕괴와 같은 구조적 참사는 물론이고, 대구지하철방화사건이나 사이코패스에 의한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기도 하다.”

-> 출처: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77

 

 

사례1: 간접인용

 

     인용)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처벌로 해결하려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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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77쪽 참조


 

원문과 표현은 다르지만, 자기 생각이 아니니까 위와 같이 인용을 해야 한다. 이것을 '간접인용'이라고 한다. 내용은 원문을 참조한 것이지만, 표현은 바꿔서 인용하는 것이다. 표현이 다르니 인용부호는 안달아도 되지만, 출처표시까지 빠지면 표절이 된다. (*인용방식은 다양하지만, 아래에서는 각주를 다는 방식으로 해보았다.) 원문과 표현을 다르게 하는 것을 '재진술' 또는 '환언'(paraphrasing)이라고 한다. 따옴표를 달아서 직접인용을 하지 않는 한, (안용표시를 하더라도) 반드시 표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잘 기억해야 한다. 초학자들이 가장 많이 실수를 하는 부분이며, 항상 자기 문장으로 쓰는 훈련을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 챕터 자체의 인용 방법

 종종, 특정 챕터 자체가 통째로 다른 사람의 특정 저술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챕터의 제목 자체에 아예 인용각주를 달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권하고 싶은 방식은 아니다. 어떻게든 여러 문헌을 참조하여 자신의 글로 재정리하는  것이 학문적으로 더 바람직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도 '재진술'은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10쪽 짜리 특정논문에 의존해서 5쪽 분량의 내용을 집필하는 경우에는 소제목에 "아래의 내용은 ~~의 논문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는 식의 각주를 달되, 그 5쪽의 내용은 원저작과는 다른 구성과 표현으로 요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성까지 완전히 다르긴 어렵지만 최소한 표현은 직접인용이 아닌 이상 자기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고등학교 때 하던 '줄거리 요약'과 비슷하다. 줄거리요약을 하더라도 원문의 중요한 표현 몇가지를 추출해서 나열하는 식으로 작성해서는 안된다. 자기표현을 사용해야 하며, 꼭 필요한 원문의 구절들은 '직접인용'으로 처리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중고등학교 글쓰기 시간에 잘못 배운 습관들이 학문의 길에 접어둔 이후에도 고쳐지지 않아서 문제가 더 커지기도 하는 것 같다.



사례2: 문장 중 직접인용



 인용)

구조적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 책임의 소재를 가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라는 지적에 주목해 봐야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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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77쪽 참조.

 


이 부분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원문(홍성수의 글)에서 착안한 것이기 때문에 인용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라는 부분은 표현이 원문과 완전히 동일하다. 이렇게 내용뿐만 아니라 표현까지 옮겨오는 경우에는 원문의 표현을 인용부호(큰따옴표)를 달아 정확히 표시해 줘야 한다. 자기 표현이 아니라 원저자의 표현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다. 그게 아니라면, 사례1)에서처럼 자신의 표현으로 바꿔써야(paraphrasing) 한다. 올바른 인용방법은 다음과 같다. 

 

     인용)

구조적 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 책임의 소재를 가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 점에 대해 홍성수는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라고 말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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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77.


 

이렇게 인용표시를 해야, 원저자의 내용을 옮겨왔다는 점과 어떤 표현이 필자의 것이고 어떤 표현이 원저자의 것인지를 분명하게 표시할 수 있다. 



사례3: 문장 중 직접인용


사례2에서처럼 인용표시 없이 함부로 원문 표현을 그대로 옮겨오면 안되지만, 중요하지 않은 단어 몇 개 정도는 괜찮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과도하면 안된다. 앞서 소개한 바대로 표절 지침에서는 6단어 또는 2문장이 연속해서 일치하면 표절이라고 보기도 한다. 설사 독창적인 문장이 아니더라도, 연속해서 일치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걸 거꾸로 얘기하면 6단어/2문장 이하는 괜찮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6단어/2문장 이하라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원문)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형태입니다.

- 출처: 신영복, 처음처럼, 랜덤하우스, 2007, 174

 



 인용)

서로 사랑하고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역시 입장의 동일함에서 나온다고 믿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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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영복, 처음처럼, 랜덤하우스, 2007, 174.

 


이렇게 인용해줘야 한다. “입장의 동일함은 단 두 단어지만 원저의 맥락상 사태의 핵심을 꿰뚫는 키워드이다. 따라서 따옴표로 표시하여 나의 표현이 아니라 원저자의 표현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용표시를 안했다면 당연히 표절이고, 인용표시는 했더라도 인용부호가 생략되었다면 표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즉, 아무리 독창적이지 않은 표현이라고 해도 6단어 이상 연속해서 일치하면 표절이 될 수 있고, 2단어라고 해도 독창적이고 중요한 표현이면 표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표절의 '양'이 절대적일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사례4: 직접인용

 

       인용)

흔히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해 발생한 대형참사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책임자 처벌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홍성수는 체계이론에 기반해서 이렇게 말한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의 붕괴와 같은 구조적 참사는 물론이고, 대구지하철방화사건이나 사이코패스에 의한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그 책임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기도 하다.”1)

 

 특히 구조적인 참사 뿐만 아니라, 살인사건 같이 개인범죄 같이 보이는 범죄에도 특정 개인의 문제로 지적하지 않는 이유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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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77. ‘특정 개인는 필자가 강조한 것이다.

 

 

아예 문장을 그대로 옮겨올 때는 이렇게 단락을 바꿔서 인용하는 것이 좋다. 따옴표 표시를 해야 하고, 따옴표 안에 들어간 원문의 문장은 조사, 문장부호, 강조표시 그 어느 것도 함부로 바꾸거나 생략해서는 안된다. 중간에 생략한 경우에는 중략이라고 하거나 말줄임표 ()로 표시해야 한다. 원문에 없는 문장부호(감탄사 등)를 임의로 넣는다거나, 굵은 글씨로 강조표시를 해도 안된다. 수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무엇을 어떻게 수정했는지를 표시하고, 원저자가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수정했다는 점을 표시해줘야 한다.

 


사례5: 재인용

 


     원문)

, 루만의 사회이론의 대상인 사회적 체계는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작동적, 폐쇄적 사회체계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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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uhmann,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Frankfurt: Suhrkamp, 1997, 205.

 

출처: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54

 

이 부분을 인용을 하고 싶은데, 1차 문헌인 Luhmann의 저서를 찾아서 확인하지 못했고, 홍성수의 논문(2차 문헌)만 보고 인용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표시한다.

 

     인용)

루만은 사회적 체계를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작동적, 폐쇄적 사회체계라고 설명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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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uhmann,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Frankfurt: Suhrkamp, 1997, 205-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010, 254쪽에서 재인용.

 


복잡하지만 이렇게 인용해줘야 한다. 원출처를 확인해 보긴 했지만, 번역표현이 홍성수의 번역을 참조해서 한 것이라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인용)

루만은 사회적 체계를 소통에 기반을 두고 작동하는 폐쇄적 사회체계라고 설명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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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uhmann,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Frankfurt: Suhrkamp, 1997, 205; 번역표현은 홍성수, “인간이 없는 인권이론? 루만의 체계이론과 인권”, 법철학연구, 13권 제3, 254쪽을 참고하여 약간 수정했다.

 


다만, 일치하는 번역표현이 너무 뻔한 경우에는, 굳이 번역할 때 참고한 문헌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참고: 재인용의 윤리

학술논문에서 재인용이 많은 것은 좋지 않다가능하면 재인용된 1차 문헌을 직접 읽어 보고 그걸로 직접 인용하는 것이 좋다. 즉, 위의 경우라면 Luhmann의 저서를 찾아서 읽어보고 독일어원문을 직접 번역해서 인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개인적인 경험인데, 논문을 쓸 때, 재인용하기 싫어서 도서관에서 오래된 1차 문헌을 찾는데 반나절을 보내고, 재인용된 구절 부분을 (앞뒤로) 읽느라 일주일을 보낸 경우도 있다. 그러고 나서야, 1차 문헌을 직접 인용한 한 줄 짜리 각주를 달 수 있었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이렇게 고된 일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고, 때로는 그냥 재인용처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 재인용 관련해서 실수를 하는 경우는 '메모' 때문인 경우가 많다. 컴퓨터로 논문을 쓰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좋은 구절이 나오면 컴퓨터 파일에 저장을 해놓곤 하는데, 그걸 나중에 활용하다보면 자기가 써먹고 있는 문구가 인용을 해야 하는 것인지 재인용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메모도 내가 직접 본 것인지, 내가 본 문헌에서 재인용된 것인지를 잘 구분해서 정리해 놓아야 한다. 이래저래 정확히 인용해 가며 논문을 쓰는 것은 힘든 일이다.

 

※ 참고: 저작권과 표절

'저작권'과 '표절'은 다른 개념이다. 저작권은 저술에 대한 '권리'이고, '표절'은 학계에서 논의되는 윤리적인 문제이다. 물론 서로 연관성은 있지만 그 판단기준과 절차는 다른 경우도 많다. 법적으로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려면 형법의 범죄구성요건이나 민사법의 법리를 충족해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표절보다는 범위가 작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형법상 저작권 침해가 처벌되려면, '고의'가 있어야 하고 피해자의 '고소'도 있어야 하며, 민법상 손해배상책임을 물으려면, 고의.과실. 침해, 손해, 침해-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이 입증되어야 하는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저작권 침해가 표절보다 범위가 작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지만, 학계에서 '표절'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판결문이나 입법/행정의 목적을 위한 내부자료, 정치연설 등과 관련해서는 저작권이 제한되지만, 학계의 윤리적 관점에서는 이것을 무단으로 활용할 경우 표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낸 정부의 공적 문서를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경우에도 정확히 인용을 해줘야한다. 만약 이 때 아무런 인용 없이 자신의 순수한 아이디어인 것처럼 쓰게 되면 (대개의 경우 저작권 침해가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윤리적으로는 표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 학위논문 일부의 재출간 문제


마지막으로, 자신의 학위논문을 활용하여 학술논문을 쓰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하거나, 두 편이나 세 편까지는 무방하다는 식의 기계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 쟁점 역시 문제가 되는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에서(그리고 영국이나 미국에서)의 학위논문은 기본적으로 '미간행논문'(unpublished dissertations)이다. 즉 '출판물'(publications)이 아니라는 얘기다. '출판'이라는 뜻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공개된다는 뜻인데, 학위논문은 대개 본인과 지도교수가 한 부씩 나눠 갖고, 그 대학의 도서관에 한 부 비치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간행이라고 보는 것이다. 출판된 것이 아니니,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몇 차례 재활용하건 간에 문제될 것이 없다심지어 필자가 영국에서 공부할 때는 대학원생 논문쓰기워크숍에서는 박사논문을 쪼개서 여러 편의 논문을 만드는 법에 대한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강의를 들어본 적도 있다. 각 논문이 서로 중복되지 않고 자기완결성을 갖는 한, 몇 편으로 쪼개건 문제가 아니다. 다만업적평가나 임용심사 시에 학위논문과 학위논문을 활용해 출판된 논문을 중복해서 업적으로 인정할 것인가는 별개 문제다. 이것은 개별 학교의 업적평가기준에 따르면 된다. 요즘은 학위논문이 데이터베이스화되어 공개되거나 학술대회 자료집 원문 파일이 홈페이지에 탑재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것을 출판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박사학위논문이 단행본으로 이미 '출판'된 경우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출판물'을 다시 '출판'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문제가 되는 이유에 근거하여 접근하면 문제에 대한 판단이 어렵지 않다. 한편, 자신의 학위논문을 재활용해서 논문으로 내는 경우에, 그 사실을 밝혀야 하는지, 즉 인용을 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고한 관례가 없긴 하지만, 한 챕터를 그대로 논문으로 출판하거나 활용한 분량이 많을 경우에는 정보제공차원에서 인용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학술대회 발표문을 논문으로 출간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학술대회 발표문은 출판문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예외적으로 이공계에서 학술대회 proceedings이 그대로 publications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 경우는 달리 봐야 할 것임) 그 학술대회 발표장에 가서야 '학술대회 자료집'(proceedings)으로 받아볼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술대회 발표문을 저널에 다시 싣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참고: 중복게재와 자기 글의 재활용


중복게재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다. 출판권을 침해하거나 업적 부풀리기를 하면 안되겠지만, 본인의 생각을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에 속한다. 일례로 외국저널에 실린 영어논문을 한국어저널에 한국논문으로 다시 내면 '자기표절'이라고 하는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쪽 저널 편집자의 양해만 구한다면 얼마든지 중복게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의 석학들이 이렇게 독일어, 영어로 영국-독일 저널에 각각 동시에 게재하는 사례는 꽤 많다. 독자층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법사회학연구'에 '베버의 근대법'이라는 논문이 있는데, '사회학연구'라는 저널의 편집자가 '근대법과 사회학' 특집호를 내면서, 그 논문을 게재하길 원할 수가 있다. 법사회학연구와 사회학연구의 독자층이 다르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고, 베버에 관련된 논문이 꼭 들어가야 균형이 맞는 상황인데, 그 논문 외에 다른 논문을 섭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법사회학연구'에 실렸던 논문을 '사회학연구'에 재게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 양쪽 저널의 편집자에게 이 사실을 명확히 알리고  양해를 구해야 하며, '사회학연구'의 논문에 이전에 발표되어던 논문이라는 사실이 표시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어느 경우에나 업적이 중복계산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서울대와 고려대의 연구윤리규정에는 이와 관련한 조항이 있다.

 

고려대학교 교원연구윤리지침 (2007) 

제31조 제2항 이미 출간된 논문을 인지할 수 없는 다른 독자군을 위하여 중복게재를 하는 경우에는 두 학술지의 편집인이 중복게재에 대해 동의해야 하고저자는 학술지의 독자들에게 동일 논문이 다른 학술지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한 언어로 출간된 논문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여 다른 학술지에 출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서울대학교 연구지침(2010) 

제9조 (중복게재ㆍ출간의 제한) ① 연구자는 이미 게재ㆍ출간된 자신의 논문이나 저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확한 출처표시 및 인용표시 없이 동일 언어 또는 다른 언어로 중복하여 게재ㆍ출간하여서는 아니 된다. 연구 데이터나 문장이 일부 다르더라도 전체적으로 동일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② 제1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 해당하는 게재ㆍ출간을 할 수 있다. 다만, 제1호부터 제6호까지의 경우에는 정확한 출처표시 또는 인용표시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전공 분야의 특성과 해당 학계의 의견을 고려하여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

1. 학위논문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별개의 논문 또는 저서로 게재ㆍ출간하는 경우

2. 연구용역 보고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논문 또는 저서로 게재ㆍ출간하는 경우

3. 이미 게재된 논문들을 모아 저서로 출간하는 경우

4. 동일한 논문이나 저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동일 또는 다른 언어로 게재ㆍ출간하면서 해당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은 경우

5. 학술지에 짧은 서간논문(letter, brief communication 등)을 게재한 후 이를 긴 논문으로 바꾸어 게재ㆍ출간하거나, 연구 데이터, 해석 또는 자세한 연구수행과정의 정보 등을 추가하여 게재ㆍ출간하는 경우

6. 이미 게재ㆍ출간된 논문 및 저서의 전부 또는 일부가 저자의 승인 하에 다른 편저자에 의해 선택, 편집되어 선집(anthology)의 형태로 출간되거나, 학술지의 특집호에 게재되는 경우

7. 이미 게재ㆍ출간된 논문 또는 저서의 내용 전부 또는 일부를 교양서, 대중잡지 등 비학술용(非學術用) 출판물에 쉽게 풀어 써서 게재ㆍ출간하는 경우

8. 그 밖에 위 각 호에 준하는 게재ㆍ출간으로서 학문적 진실성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경우

③ 이미 발표된 연구결과를 지식재산권으로 등록하는 것은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과 관계없이 허용된다.



지금까지 얘기는 한 논문을 두 개 이상의 학술지에 중복게재하는 경우였다. 그렇다면 이미 출간된 자신의 논문의 '일부'를 자신의 다른 논문에서 '재활용'하는 경우는 어떨까? 이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남의 생각을 훔쳤다'는 일반적인 의미의 '표절'이 아니라, '저작권 침해'다. 법적으로, 자신이 투고한 논문의 저작권이 학술지에 이양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법적 문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른바 '논문 저작권 이양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 즉, 자신의 논문이라도 저작권은 학술지가 소유하는 것인데, 그 논문의 일부를 자신의 다른 논문에 재활용했다면 원래 논문이 실렸던 학술지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될 수 있으며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논문 일부의 '재활용'을 '타인의 논문을 베낀 경우'만큼 엄격하게 문제삼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즉, 타인의 논문이라면 짧은 분량이라도 적절한 인용없이 활용하면 안되겠지만, 자신의 글에는 동일한 기준이 적용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연속 6글자'라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남의 생각을 '도둑질'하지 않고서는 연속해서 6글자가 동일한 '우연'이 발생할 수 없다는 전제인데, 자기 생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는 그런 '우연'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논문은 이전 연구와 '연속성'을 갖고 누적적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즉, 한 저자가 자신의 논문A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서, 자신의 새로운 논문B를 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당연히 일부 내용이 중복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저작권 측면에서 봐도, A학술지의 글이 B학술지에 통째로 게재된다면 A학술지의 저작권이 침해된 것일 수 있겠지만, A학술지에 게재된 자신의 논문의 일부 내용을  B학술지의 자신의 논문에서 재활용했다고 해서, A학술지의 저작권이 실질적으로 침해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저작권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관계로 권위있는 얘기를 하긴 어렵지만, 이 정도를 가지고 저작권 침해라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한편, 일부 내용을 재활용하긴 했지만, 독립적인 내용을 가진 별개의 논문이라면 업적 중복계산도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글을 재활용할 경우 출처표시를 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자신의 논문이 어떻게 누적적으로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 글 인용이 정확하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비윤리적이라고 봐야하는지는 의문이다. 일부 내용의 재활용을 과도하게 문제 삼는 것은 연구자의 학문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질적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논문이 맞다면, 일정한 수준의 자기논문 재활용은 인용이 없더라도 (저작권 침해의 수준이 아닌 이상) 문제삼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만, 일정한 분량 이상을 그대로 재활용할 때에는, 자신의 학문적 궤적을 보여주는 정보제공 차원에서 인용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뿐이다. 정리하자면, 


1) 질적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논문에서 자신의 과거 논문의 일부를 재활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면) 문제되지 않는다. 

2) 단, 재활용한 분량이 일정한 분량을 초과한다면 (독자에 대한 정보제공 차원에서) 인용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대하여 서울대 연구윤리지침(2008, 2010)은 아예, "한 단락 또는 5개 이상의 문장을 연속적으로 재사용하는 경우"에는 정확한 인용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재사용의 '양'을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하나의 기준으로 참고할 만하다. 


제8조 (자신의 연구성과 사용)

① 연구자는 연구문헌을 작성함에 있어 원칙적으로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 연구데이터 및 문장을 사용하여야 하고, 이전에 발표한 적이 없는 연구 결과물을 담아야 한다.

② 연구자는 연구문헌을 작성함에 있어 당해 연구의 독자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미 게재ㆍ출간된 자신의 연구 결과물을 부분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연구데이터는 정확한 출처 표시와 함께 사용하여야 하며, 당해 연구에서 처음 발표하는 것처럼 제시해서는 아니 된다. 과거에 작성한 논문에서 최소한 한 단락 이상, 또는 5개 이상의 문장을 연속적으로 재사용하는 경우에는 정확한 출처와 인용 표시를 하여야 한다.

③ 연구자는 이미 발표된 자신의 연구성과가 이미 교과서 또는 공개적으로 출간된 데이터 파일에 게재되어 일반적 지식으로 통용되는 경우에는 그 연구성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출처표시 및 인용표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참고로, 자기표절에 관한 문제에 관련해서는, 표절 문제의 권위자로 알려진 이인재 교수 ["연구부정행위로서 표절과 올바른 글쓰기", 물리학과 첨단기술, 2008년 4월]의 견해에 약간의 이견이 있다. 이 교수는 자기표절이 "기만에 속하며 연구의 어느 수준에서나 용인될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나, 필자는 "경우에 따라 용인될 수 있으며, 타인표절의 경우를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정리하고 싶다. 여하튼, 자기논문 재활용 문제는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여서 학계에서 좀 더 활발한 공론이 형성되고 이에 대한 관례가 확립되었으면 한다.



표절/인용에 대한 참고 사이트: 기타 표절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연구윤리정보센터에 가보면 자세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http://www.cre.or.kr

Posted by transpr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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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바롬 2013.01.04 0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실 인용이라는 것이 정말 번거롭게 생각 될 수도 있지만 academic integrity의 문제에서는 정말 중요한 부분이지요.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는 조금 덜 중요시 여겨지는 것 같지만, 더 교육이 필요한 문제겠지요.

    • transproms 2013.02.20 0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 감사합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서 너무 휩쓸려온 경향이 있는데 (물론 문제제기 자체는 꼭 필요한 것이었고요), 이제부터라도 학계에서 차분하게 좋은 관행을 만들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2. 이태경 2013.06.15 2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상세한글 감사하구요...
    제가 이번에 팀이랑 보고서를 쓰려고 카페를 하나 개설했는데
    그곳에 Tip으로 이 글을 가져가도 될까요??

    • sungsooh@gmail.com 2013.06.20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감사합니다^^ 퍼가셔도 좋습니다만, 권위가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학계의 전반적인 의견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저의 의견에 가까운 부분도 있다는 점을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3. ro 2013.07.29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감사합니다.
    혼란스러워서, 인터넷을 많이 찾아봤는데 어려웠습니다.
    혹시라도..의도는 없었더라도 표절을 하게 되는게 아닌가 두려웠는데, 글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여러 번 읽고 숙지하려 합니다. ^^

  4. 2014.06.02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transproms 2014.06.03 0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간접인용의 범위는 기본적으로 '문장'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 문장 이상일 때는 각주에 "아래의 내용은 ~~ 참조", "~~에 대한 설명은 ~~ 참조"라는 식으로 해주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렇게 달아놓고, 자기 문장으로 서술하면 그게 간접인용인 것이죠.

  5. 아리내 2014.11.23 16: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논문 쓰면서 인용하는 부분이 막막했었는데 이제 정리가 좀 되네요. ^^

  6. Wonie94 2015.08.19 13: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학문의 길을 생각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매번 글을 쓰면서 이게 맞나 고민이 많았는데, 명쾌하게 정리해주시니 이해가 잘 됩니다.

저도 직업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곤 하는 글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권하기도 하지만, 사실 저도 이런 학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죠.

표절논문이 문제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도 큰 시사점을 주는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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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

 


오욱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인생은 너무나 많은 우연들이 필연적인 조건으로 작용함으로써 다양해집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전공분야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길로 접어든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을 겁니다. 전공이 같았던 동년배 학우들이 각기 다른 진로를 선택함으로써 흩어진 경험도 했을 겁니다. 같은 전공으로 함께 대학원에 진학했는데도 전공 내 하위영역에 따라, 그리고 지도교수의 성향과 영향력에 따라 상당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겁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저는 한국교육학회나 분과학회에 정회원으로 또는 준회원으로 가입한 젊은 학자들에게 학자로서의 삶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몇가지 조언을 하고자 합니다. 이 조언은 철칙도 아니고 금언도 아닙니다. 학자로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노하우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읽기를 바랍니다. 이 조언은 제가 젊었을 때 듣고 싶었던 것들입니다. 젊은 교육학도였을 때, 저는 이러한 유형의 안내를 받지 못했습니다.

 

직업에 따라 상당히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기 때문에, 저는 직업을 생업(生業)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학문은 권력이나 재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학자로서의 성공은 학문적 업적으로만 판가름됩니다. 자신의 직업을 중시한다면, 그 직업을 소득원으로써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치로 받아들여야 맞습니다. 아래에 나열된 조언들은 제가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조언들은 제 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일자리는 있다”고 확신하십시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구직난을 호소하지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구인난으로 애를 태웁니다. 신임교수채용에 응모한 학자들은 채용과정의 까다로움과 편견을 비판합니다만, 공채심사위원들은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합니다. 공정한 선발 과정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기원하면서 요구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는 데에 더 힘쓰십시오.

 

 학문에 몰입하는 학자들을 가까이 하십시오. 젊은 학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모형이 되어줄 스승, 선배, 동료, 후배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에는 따라해 보는 방법이 효율적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스타일을 갖추면 됩니다. 학문에의 오리엔테이션을 누구로부터 받느냐에 따라 학자의 유형이 상당히 좌우됩니다.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반드시 학문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존경할 수 없는 학자들을 직면했을 경우에는, 부정적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다시 말해서, 그 사람들과 다르기 위해 노력하면 정도(正道)로 갈 수 있습니다.

 

 시․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위대한 학자보다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은, 그렇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모형으로 삼으십시오. 의식을 해야만 인식되는 사람은 일상적인 모형이 될 수 없습니다. 수시로 접하고 피할 수 없는 주변의 학자들 가운데에서 모형을 찾아야 합니다. 그 모형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에는, 여러분이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 때, 눈을 들어 조금 더 멀리 있는 모형 학자들을 찾으십시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분이 훌륭한 학자에 가까워집니다.

 

 아직 학문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가능한 조속히 결정해야 합니다.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곧바로 이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학문은 적당히 해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택하지 않은 일에 매진할 리 없고, 매진하지 않는 일이 성공할 리 없습니다. 학계에서의 업적은 창조의 결과입니다. 적당히 공부하는 것은 게으름을 연습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게으른 학자는 학문적으로 성공할 수 없으며, 학계는 지적 업적을 촉구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읽고 쓰는 일보다 더 오래 할 수 있고 더 즐거운 일을 가진 사람은 학문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읽었는데도 이해되지 않아서 속이 상하고 글쓰기로 피를 말리는 사태는 학자들에게 예사로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읽고 씁니다. 이 일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일은 어렵고 힘들수록 더 가치 있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읽고 쓰는 일을 피하려고 하면서도 그 일에 다가간다면, 학자로서 적합합니다.

 

 학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부족하다면, 대인관계를 줄여야 합니다. 학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학문에 투입하는 시간은 다른 업무에 할당하는 시간과 영합(zero sum)관계에 있습니다. 학문을 위한 시간을 늘리려면 반드시 다른 일들을 줄여야 합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대인관계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부가 보험설계사의 전화번호부처럼 다양하고 많은 인명들로 채워져 있다면, 학문하는 시간을 늘릴 수 없습니다. 물론 대인관계도 사회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학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학문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불행해집니다.

 

 학문 외적 업무에 동원될 때에는 맡겨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에 헌신하지는 마십시오. 젊은 학자들은 어디에서 근무하든 여러 가지 업무―흔히 잡무로 불리는 일―에 동원됩니다. 선택할 수 있을 때에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는 선택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마련입니다. 그 일을 부탁한 사람들은 젊은 학자들보다 직위가 높고 영향력이 더 큽니다. 그리고 그들은 젊은 학자들이 일하는 자세를 눈여겨봅니다. 잡무를 부탁하는 사람들은 젊은 학자들에게 평생 직업을 제공하거나 추천하거나 소개하는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기 싫지만 피할 수 없을 때에는 성실해야 합니다.

 

 시작하는 절차를 생략하십시오. 논문을 쓸 때 가장 힘든 시기는 시작할 때입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결과가 나올 리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하면 될 일을 시작하는 절차에 구태여 의미를 부여하고 길일(吉日)이나 적일(的日)을 찾다가 실기(失機)합니다. 신학기에, 방학과 함께, 이 과제가 끝나면 시작하려니까 당연히 신학기까지, 방학할 때까지, 과제가 끝날 때까지 미루게 되고 정작 그 때가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새로운 변명꺼리를 만들어 미루게 됩니다. “게으른 사람은 재치 있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답니다(성경 잠언 27:16). 논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즉시 그리고 거침없이 많이 기록해두어야 합니다. 적기를 기다리다가는 아이디어를 놓칩니다. 사라진 아이디어는 천금을 주어도 되찾을 수 없습니다.

 

 표절은 학자에게 치명적인 오명이 됩니다. 표절은 의식적으로도 그리고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납니다. 표절에의 유혹은 게으름과 안일함에서 시작됩니다. 표절을 알고 할 때에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유리한 변명이 충분히 만들어집니다. 표절하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모르고 표절할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발표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글쓰기에 엄격한 사람들을 가까이 해야 하고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발표된 후에 표절로 밝혀지면, 감당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시간과 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도서구입에 인색하고 음주나 명품구매에 거침없다면 학자로서 문제가 있습니다. 읽을 책이 없으면 읽어야 할 이유까지도 사라집니다. 책을 구입하고 자료를 복사하는 데 주저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면 구입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지를 따지는 것은 책을 사지 않으려는 이유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 문헌들을 읽거나 가까이 두고 보아야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됩니다.

 

 새 책을 구입했을 때나 새 논문을 복사했을 때에는 즉시 첫 장을 읽어두십시오. 그러면 책과 논문이 생경스럽지 않게 됩니다. 다음에 읽을 때에는, 시작하는 기분이 적게 들어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구입한 책과 복사한 논문을 도서관 자료처럼 대하지 마십시오. 읽은 부분에 흔적을 많이 남겨두십시오.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반론이 생각나면, 그 쪽의 여백에 적어두십시오. 그것이 저자와의 토론입니다. 그 토론은 자신이 쓸 글의 쏘시개가 됩니다.

 

 학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학회의 주체로서 활동하고 손님처럼 처신하지 마십시오. 학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긍정적 모형들과 부정적 모형들을 많이 접해보십시오. 좋은 발표들로 모범 사례들을 만들어가고 실망스러운 발표들을 들을 때에는 그 이유들을 분석해보십시오. 학회에 가면 학문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학회에 가면 필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성적 자극도 받을 수 있습니다.

 

 지도교수나 선배가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해주지 않음을 명심하십시오. 학위논문을 작성할 때 지도교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배의 조언은 학위논문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도와 도움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그들에게 종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홀로서기가 시련이듯이, 학자로서의 독립도 어렵습니다. 은사나 선배에의 종속은 그들의 요구 때문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젊은 학자들이 스스로 안주하려는 자세 때문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걸작(傑作)이나 대작(大作)보다 습작(習作)에 충실하십시오. 논문을 쓰지 못하는 학자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걸작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들은 다른 학자들의 논문들을 시시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찮게 평가한 논문들과 비슷한 수준의 논문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논문을 쓰는 데 엄청난 압박을 느낍니다. 걸작에 대한 소망은 학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걸작은 쉽게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걸작을 지향한 논문이라고 해서 걸작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논문을 쓸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그 논문들이 쌓여지면서 걸작과 대작이 가능해질 뿐입니다.

 

 학자의 길을 선택한 후에는 곧바로 연구업적에 대한 압박이 시작됩니다. 교수직을 구하려면 반드시 연구업적을 충분히 갖추어야 합니다. 많은 대학에서 연구보고서는 연구업적으로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저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번역서에 대한 평가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낮습니다. 번역보다 창작에 몰두하십시오. 번역은 손쉬워 보이지만 아주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색도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역했을 경우에는 지적 능력을 크게 의심받습니다.

 

 학자가 되고 난 후에는 저서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압박도 만만치 않습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러 책을 찾을 때 다른 학자들이 쓴 책들만 보이면 상당히 우울해집니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동료들이 교과서와 전공서를 출판할 때에는 뒤처지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학자들이 젊었을 때부터 교과서 집필을 서두릅니다. 교과서 집필은 생각과는 다르게 아주 어렵습니다. 교과서에 담길 내용은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쓸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논문과는 다르게, 교과서 집필은 다른 학자들도 알고 있는 내용들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이어서 표절의 가능성도 아주 높고, 오류가 있을 경우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학자로서 최소 10년은 지난 후에 교과서 집필을 고려하십시오.

 

 학회에 투고한 논문이 게재되지 않더라도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학회에서 발행되는 정기학술지에의 게재 가능성은 50퍼센트 수준입니다. 까다로운 학술지의 탈락률은 60퍼센트를 넘습니다. 그리고 학계의 초보인 여러분이 중견․원로 학자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할 리도 없지 않습니까? 아이디어를 짜내어 논문을 작성한 후 발송했더니 투고양식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맞거나,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게재불가 판정을 한 심사평을 받을 수도 있으며, 최신 문헌과 자료를 사용했는데 이에 대해 문외한인 심사자를 만나 거부될 수도 있습니다. 게재불가를 받은 자신의 논문보다 훨씬 못한 논문들이 게재되는 난감한 경우도 겪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투고해야 합니다. 학회에 투고하기 전에 학회 편집위원회보다 더 까다로운 사람들로부터 예비 심사를 받기를 권합니다.

 

 학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학문 활동을 쉽게 생각합니다. “앉아서 책만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은 소일거리처럼 책만 보는 일이 아닙니다. 논문작성은 피를 말리는 작업입니다. 이 일을 오랫동안 해 온 저도 논문을 작성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논문은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글이 아닙니다. 인문사회계에는 깜짝 놀랄 일이 많지 않습니다. 논문의 주제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 찾아야 합니다. 논문은 새로운 것을 밝히는 작업이라는 점에 집착함으로써 낯선 분야에서 주제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논문을 쓰려면 책상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논문의 아이디어는 직감(hunch)에서 나올지 몰라도 논문 글쓰기는 분명히 인내를 요구하는 노역입니다. 책상에 붙어 있으려면 책상에 소일거리를 준비해 두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십시오. 컴퓨터는 최상의 제품을 구비하십시오. 프린터는 빨리 인쇄되는 제품을 구비하고 자주 인쇄하십시오. 퇴고는 반드시 모니터보다는 인쇄물로 하십시오. 퇴고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논문을 심사하듯 비판적으로 살펴보십시오. 논문의 초고를 작성했을 때쯤이면 내용을 거의 외우게 됩니다. 그래서 오류를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리 세심하게 작성하더라도 초고에는 오류가 아주 많습니다. 이 오류들을 잡아내려면 그 논문을 남의 논문처럼 따져가며 읽어야 합니다. 앞에서부터도 읽고, 뒤에서부터도 읽어야 하며, 중간부터도 읽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오래 묵혔다가 다시 읽어보기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방법은 모두 동원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학회에 투고했을 때 심사위원들이 남의 글을 비판하듯 읽기 때문입니다. 논문심사자들은 심사대상 논문에 대해 호의적이 아닙니다. 이들은 익명이기 때문에 객관적이며 탈락률을 높여달라는 요구를 받을 때에는 아주 냉정해집니다.

 

 학자의 길을 선택한 후에는 반드시 지적 업적을 갖추어야 합니다. 연구업적이 부족하면, 학계에서 설 땅이 별로 없습니다. 부족한 연구업적을 다른 것들로 보완하는 일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떳떳하지도 않습니다. 쫓기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자신의 전공영역에서 발간되는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들을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관심이 끌리는 논문들은 복사하여 가까운 데 두십시오. 그 논문들을 끈기 있게 파고들면, 여러분이 써야 할 글의 주제와 소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젊은 교육학자들이 학자로서의 일상을 즐거워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 가지 학술모임에서 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들의 즐거움과 행복으로 한국의 교육학이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 필자 :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석사,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PhD,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출처: 한국교육학회 뉴스레터 260호 (20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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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3일은 긴급조치 9호가 제정된 날입니다 (1975.5.13). 유언비어를 유포나 사실을 왜곡하는 것, 헌법의 개정/폐지를 주장하는 행위를 하면, 1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무시무시한 명령이죠.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하면 법관의 영장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이 가능하구요. 국방부 장관은 병력을 지원할 수 있고, 이 조치에 의한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가 되지 않습니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역시 "이 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 부당한 조치를 만들어 놓고, 그 조치가 부당하다고 말하면 처벌하는 자기완결성(?)이 있습니다. "유언비어 유포 또는 헌법개정 주장 금지 -> 조치 위반 시 영장없이 체포 -> 병력지원도 가능 -> 사법심사는 안받음 -> 이러한 조치를 비방하면 처벌." 한마디로 '완벽한 순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 성실하고 꼼꼼한 ‘악’이죠. 


긴급조치 9호는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1979년 12월 7일에 해제되었구요. 4년 동안 이 조치의 위반으로 8백여명이 구속되었습니다. ‘전국토의 감옥화’, ‘전국민의 죄수화’라는 말이 유행했던 민주주의의 암흑기였습니다.


지난 2010년 긴급조치 1호가 위헌 판결을 받았고,. 현재 2호, 9호에 대해 위헌심판이 제기된 상태입니다. 긴급조치의 시대는 이렇게 끝나가지만, 허위사실유포를 처벌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국가의 욕망이 몇 년전부터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 참고로, 긴급조치 9호를 첨부합니다.


국가안전과공공질서의수호를위한대통령긴급조치

[ 제정 1975.5.13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


 1. 다음 각호의 행위를 금한다.

  가. 류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 하여 전파하는 행위.

  나. 집회·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 등 공중전파수단이나 문서, 도화, 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다. 학교당국의 지도, 감독하에 행하는 수업, 연구 또는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았거나 기타 의례적 비정치적 활동을 제외한, 학생의 집회·시위 또는 정치관여행위.

  라. 이 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

2. 제1에 위반한 내용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하거나, 그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배포·판매·소지 또는 전시하는 행위를 금한다.

3. 재산을 도피시킬 목적으로,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 국민의 재산을 국외에 이동하거나 국내에 반입될 재산을 국외에 은익 또는 처분하는 행위를 금한다.

4. 관계서류의 허위기재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해외이주의 허가를 받거나 국외에 도피하는 행위를 금한다.

5. 주무부장관은 이 조치위반자·범행당시의 그 소속 학교, 단체나 사업체 또는 그 대표자나 장에 대하여 다음 각호의 명령이나 조치를 할 수 있다.

  가. 대표자나 장에 대한 소속임직원·교직원 또는 학생의 해임이나 제적의 명령.

  나. 대표자나 장·소속 임직원·교직원이나 학생의 해임 또는 제적의 조치.

  다. 방송·보도·제작·판매 또는 배포의 금지조치.

  라. 휴업·휴교·정간·폐간·해산 또는 폐쇄의 조치.

  마. 승인·등록·인가·허가 또는 면허의 취소조치.

6.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은 이 조치에 저촉되더라도 처벌하지 아니한다. 다만, 그 발언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한 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7.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0년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미수에 그치거나 예비 또는 음모한 자도 또한 같다.

8.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없이 체포·구금·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다.

9. 이 조치 시행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2조(뇌물죄의 가중처벌)의 죄를 범한 공무원이나 정부관리기업체의 간부직원 또는 동법 제5조(국고손실)의 죄를 범한 회계관계직원 등에 대하여는, 동법 각조에 정한 형에, 수뇌액 또는 국고손실액의 10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병과한다.

10. 이 조치위반의 죄는 일반법원에서 심판한다.

11. 이 조치의 시행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주무부장관이 정한다.

12. 국방부장관은 서울특별시장·부산시장 또느 도지사로부터 치안질서 유지를 위한 병력출동의 요청을 받은 때에는 이에 응하여 지원할 수 있다.

13. 이 조치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부칙 <제9호, 1975.5.13>

14. 이 조치는 1975년 5월 13일 15시부터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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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주 영국 지방선거는 노동당이 승리했으나 런던시장 선거에서 켄 리빙스턴은 낙선. 그는 “빨갱이 켄”(red Ken)이라고 불리던 노동당내 좌파였죠. 지방정부 차원에서 좌파정책이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인물이었구요.


2. 켄 리빙스턴은 1980년대 런던시장을 역임했으나, 대처에 의해 퇴출되었고, 90년대 말 토니 블레어와 대립하여 노동당에서 제명되었으나, 2000년 무소속으로 런던시장에 당선되었고, 다시 노동당에 입당합니다. 2004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2008년, 2012년 런던시장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하고 맙니다. 높은 대중적 지지를 받던 그가 2008년 3선에 실패한 이유는 이라크전 이후 노동당의 추락 때문이었다는 것이 당시 언론의 분석이었습니다. 부수적인 이유로는 총 10년이 넘는 긴 재임기간으로 인해 신선함이 떨어졌고, 이는 당시 40대 초반의 보수당 후보 보리스 존슨과 대조를 이뤘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대부분의 런던시정책이 지지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고, 도저히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2012년 낙선 이유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자료를 찾고 있는 중인데, 2008년 이후에 제가 귀국을 해서 계속 모니터하지는 못했어요...;;)


3. 켄 리빙스턴은 런던시장 재임 시절, 영국/미국의 대중동정책(이라크전)을 강하게 비판하고, 차베스대통령과 협력하기도 했고, "부시는 인간 중 가장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 가운데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었구요. 켄 리빙스턴은 이렇게 이념적 좌파이기도 했지만, 지방정부에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구현해내어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데 성공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의 런던시정은 민간기업 공기업화/협동조합화,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도시개발계획, 대중교통요금 인하, 도심혼잡통행료 징수,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공공탁아시설 확대, 획기적인 환경정책 등으로 성공한 ‘좌파지방정부’의 한 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일전에 민주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켄 리빙스턴의 런던시 정책을 벤치마킹하기도 했었고, 최근 박원순 시장의 행보를 그와 비교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시사인 기사) 박원순 시장은 켄 리빙스턴이 한 일에 대해 잘 알고, 또 그가 왜 성공했는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서울성곽을 둘러본 후 “켄 리빙스턴 시장이 세운 런던플랜에 관한 자료를 확인해보라”고 지시하기도 했었죠. (한겨레 기사)


5. 켄 리빙스턴이 런던시장일 때, 저는 런던의 이주학생이었습니다.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었죠. 그의 대중교통정책과 외국인정책 덕에 이주자인 저도 혜택을 본 셈이었구요. 현실정치에서 (누가 되어도 큰 차이 없다고 항상 생각했기 때문에...) 누가 당선되길 간절히 바랬던 적이 거의 없는데, 2008년 런던시장 선거에서는 정말 켄 리빙스턴이 당선되길 간절히 바랬었습니다. 투표권조차 없는 이주민 신세였지만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정치무대에서 퇴장하다니.. 기분이 묘합니다. 정치라는게 동물과 같아서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 그는 이렇게 은퇴하지 않을까 합니다. 


부록1: 1980년대 켄 리빙스턴이 이끌던 “런던 광역시의회(GLC)”의 급진적 정치실험에 대한 전문적인 학술서도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 서영표 , <런던코뮌 : 지방사회주의의 실험과 좌파 정치의 재구성> - 서점 링크


부록2: 켄 리빙스턴의 "런던플랜"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가 발간한 "런던플랜-런던의 공간발전전략: 공공·평등·생태의 서울을 꿈꾸며"(2006)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자료실 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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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의 감독은 실제로 건축과 출신으로서 전공을 살려 영화를 직접 각본/각색했다고 하네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이번 학기에 강의하고 있는 과목이기도 한데, <법학개론>이라는 영화를 찍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법학과 승민은 ‘법학개론’ 수업에서 서연을 만나 법학개론 숙제를 위해 국회와 법원을 돌아다니며 사랑을 키웠죠. 서울중앙지방법원 계단에서 손목때리기 놀이도 하고.. 서연이 승민에게 말합니다... “나중에 나에게 적용되는 법은 너가 만들어줘~”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첫사랑은 실패로 돌아가고.. ㅠㅠ 15년 뒤 서연은 승민을 찾아가 자신을 위한 법률초안을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예전에 약속했잖아. 네가 내 법 만들어주기로..” 승민은 서연을 위해 법률안을 만들어 주지만, 서연은 “너무 낯설다"며 연신 퇴짜를 놓고... 

승민과 서연은 법을 함께 만들면서, 어쩌면 사랑이었을지 모를 옛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납니다. 하지만 승민은 첫사랑 서연이 찾아온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나를 찾아 온거야? 법을 만들어줄 사람이 그렇게 없었어?”

대충 이 정도 스토리를 만들어 봤는데, 어때요? 재미없을까요? 영화에 승민이 만들었던 ‘법률’은 실제로 입안하고 있던 법을 활용하고, 영화가 끝나면 전문가들이 조금 손질해서, 다음 국회 회기 때 발의하는 것으로 하면 되겠구요.ㅎㅎ

영화 ‘건축학개론’에 나오는 추억의 명곡 ‘기억의 습작’입니다. http://youtu.be/EtXJHwX3ryU <영화 법학개론>의 주제곡으로는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이나 룰라의 ‘사랑법’ 정도를 생각 중입니다^^;;

예전에 드라마 <카이스트>가 성공한 뒤, 한 작가가 법대에 와서 취재를 시작했는데, 1주를 못넘기고, “이거 그림 안나온다”고 하며 포기한 적이 있었죠. 법대생의 생활이 너무 단조로워서 도저히 드라마화할 수 없었다는 후문입니다;; (실화!)

참고로, 금요일에 실시되었던 법학개론 중간고사 시험 문제
“다음의 진술에 대해 논하라: 법학은 학문이 아니라 법률해석기술에 불과하다” 
법학에 입문하는 학생들이 꼭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서 출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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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정책제안 발표 토크쇼- 

<거짓말 같은 표현의 자유랑 인사하기: 반가워, 표현의 자유>


일시 : 2012년 4월 21일(토), 오후 3시~7시

장소 :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 (종각역 2번 출구, 안국역 6번 출구)

주관 :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

주최 : 4.9 통일평화재단, 표현의 자유옹호 및 증진을 위한 공익변론기금, 천주교인권위원회 데레사‧베드로기금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 공지영(소설가), 김조광수(영화감독, 제작자), 우석훈(2.1연구소 소장), 최승호(MBC PD, 전 PD수첩 CP), 허재현(한겨레 기자), 검은빛(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박경신(고려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 참여연대공익법센터소장), 박주민(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오성희(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이호중(서강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 표현의자유를위한연대운영위원장), 장여경(진보네트워크센터), 최은아(인권운동사랑방), 홍성수(숙명여자대학교법과대학)


*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과제를 담은 정책제안서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당일에 오시는 분들은 550쪽 짜리 두툼한 자료집을 나눠드립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 정책제안 23가지>


<표현의 자유연대 정책제안1>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 - 이명박정부 들어 국보법 적용이 확대되고, 인터넷에 대한 사찰과 규제가 강화되어왔음을 심각하게 우려하며, 국제인권기구의 권고와 헌법의 정신에 따라, 국가보안법을 즉각 폐지할 것을 제안한다.


<표현의 자유연대 정책제안2>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폐지하자! -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형법상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폐지해야 하며, 민사책임 또한 국가기관/공무원에 대한 경우, 진실한 사실의 표현으로 인한 경우에는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연대 정책제안3> 모호한 심의기준으로 청소년을 통제하는 것에 반대하며, 청소년보호법에서 청소년유해매체 심의기준 및 심의기능을 삭제하고, 각 매체별로 자율적으로 심의‧유통할 수 있도록 개정한다.


<표현의 자유연대 정책제안4>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공정성’의 명목 하에 언론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에 반대하며, 방통위의 행정 심의를 폐지하고 자율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심의 기준에 있어 ‘공정성’ 심의를 폐지하고 다양성 개념으로 대체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연대 정책제안5> 자의적인 제한상영가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비영리 영화‧영화제에 대한 검열에 반대하며, 행정기구에 의한 영등위의 ‘영상물 등급분류' 제도와 영진위의 ‘영화등급분류면제추천' 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연대 정책제안6> 인터넷 심의와 인터넷 통제 강화, 인터넷 실명제에 반대하며, 국가인권위원회와 유엔 특별보고관의 권고대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정심의를 폐지하고 자율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연대 정책제안7> 게임/가요 에 대한 자의적 심의에 반대하며, 특히, 이용자의 시간까지 규제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음반 심의제도를 폐지하고 게임물 등급위원회는 민간자율규제기구로 전환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연대 정책제안8>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선임 과정에서 독립적 인사위원회와 국회 검증 등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고, 시청자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신‧방겸영은 금지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9> 퍼블릭 액세스!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방송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별도의 심의규정과 심의기구가 필요. 시청자참여프로그램과 공동체라디오방송에 대한 지원제도 개선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10> 현행 집시법은 집회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 경찰에 사실상 허가를 받아야 하고, 평화적 집회조차 금지되기도 하는 집시법을 폐지하고, ‘집회보호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11> 차벽 등 집회방해는 이제 그만! 불심검문과 불법 채증도 제한되어야 한다. 경찰장비의 자의적 사용을 법률로써 규제하고 경찰의 불법행위나 폭력행위를 처벌한다. 집회·시위한 단체를 차별하는 지침은 삭제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12> 집회시위를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므로 제한적용 되어야 하고, 집회·시위 제한에 오남용되는 경범죄처벌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13> 선거운동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를 전면 철폐. 인터넷 실명제와 후보자비방죄 폐지, 정책에 대한 지지 반대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서, 유권자가 자유롭게 정치적 의견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14>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행사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은 배제되어야 한다. 쟁의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은 예외적으로 폭력‧파괴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만 제한적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15> 소비자 운동에 대하여 업무방해죄를 적용해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는 업무방해죄 처벌규정을 폐지한다. 소비자기본법 개정 또는 소비자운동보호법 제정으로 소비자 운동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16> 구금시설 수용자의 서신교환, 재판 관련 문서 및 창작물의 반출, 신문, 잡지, 도서 등에 대한 반입과 열독 및 공중파 TV의 시청은 허용되어야 한다. 수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외부교통권을 제한하는 징벌은 폐지되어야한다.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17> 학생인권법 제정! 학교운영 학생 참여! 학생의 집회 결사의 자유 보장! 교과과정에 정치/인권을 교육받을 수 있는 ‘시민 교육’을 포함. 선거참여 연령 16세 이상으로 확대하고, 청소년 정치참여 보장.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18> 집회 사전승인 등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대학학칙을 전면 개정하고, 대학생인권법 혹은 대학인권법을 제정하여 대학 운영에 대한 참여와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법률로써 보장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19> 군인의 복무에 관하여 백지위임한 군인사법 제47조의2를 폐지한다. 군인기본법 제정으로 군인 역시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일반시민과 동일한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20> 공무원(교원)노조법 폐지와 노동관계법 개정으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노조활동 관련하여 해직/징계된 공무원을 복권시켜야 한다. 공무원/교사 정치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치관계법을 개정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21> 정보목록을 빠짐없이 공개하고 비공개 대상을 축소하는 등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 공공기관이 생산‧보유하는 정보를 실시간공개하여, 행정투명성을 향상하고 국민참여를 촉진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22>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소수자에 대한 혐오적 표현이 차별임을 명확히 하고, 차별시정기구가 조사를 하고 조정, 화해, 시정권고 등 비사법적 구제를 제공하도록 한다.


<표현의 자유 연대 정책제안23> 공적 청원 및 표현행위가 청구원인으로 제시되는 소송에 대해서는 법원이 특별기일을 강제적으로 잡고, 시민들의 공적 발언 및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에 대해서는 각하/기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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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7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에 대한 패널 토론 22차 회의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성 소수자(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성전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종식시키자는 강한 결의를 밝혔는데, 연설문 내용이 참 담백하면서도 명쾌합니다. 아래 텍스트는 제가 연설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유엔은 최근 성소수자에 대한 행동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최초로 성소수자 차별 철폐 유엔 결의문이 채택되었고, 실태 보고서도 제출되었습니다. (두 자료 모두 첨부합니다) 이번 패널 토론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구요.

한국에서도 작년에 관련된 두 가지 사건이 있었죠. 하나는 헌법재판소에서 군형법상 계간죄(동성 성관계) 합헌 판결이고, 또 하나는 학생인권조례의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에 대한 논란입니다. 이제 이런 문제 정도는 국제기준에 맞추는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요?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연설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에 대한 패널 토의 22차 회의

2012년 3월 7일
 

Lasserre 유엔인권이사회 의장님, 이사회의 존경하는 회원국들, Pillay 유엔인권최고대표님, 귀빈 여러분, 그리고 신사숙녀 여러분,

이 역사적인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연설을 하게 되어 기쁩니다. 몇몇 사람들은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이 민감한 주제라고 말합니다. 저도 이해합니다. 제 세대의 많은 사람들처럼, 저도 이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라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삶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유엔 헌장과 세계인권선언 하에서 모든 곳의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실은 모든 지역의 충격적인 인권침해 사실이 담긴 문서를 보고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성전환자라는 이유로 폭력과 차별을 받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직장, 학교, 병원에 광범위한 편견이 있습니다. 성폭력을 포함한 끔찍한 폭력적 공격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투옥되고, 고문을 당했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이는 피해자들에게는 엄청난 비극이며, 우리의 집단적 양심에 대한 오점입니다. 이것은 또한 국제법을 위반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인권이사회의 회원국으로서 여기에 답해야 합니다.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폭력과 차별을 끝내기 위한 투쟁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투쟁입니다. 당신들에 대한 모든 공격은 유엔과 내가 수호하고 지키기로 맹세한 보편적 가치들에 대한 공격입니다. 오늘, 저는 당신들의 편에 섭니다. 그리고 모든 국가들과 사람들에게 당신들 편에 함께 서라고 요청합니다.

역사적 전환이 진행 중입니다. 더욱 많은 국가들이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나는 조건이 달린 도움에는 분명히 반대합니다. 우리는 건설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의 보고서가 그 길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폭력에 맞서 싸우고, 합의된 동성관계를 비범죄화하고, 차별을 금지하고, 대중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폭력문제가 제대로 다뤄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정기적 보고가 필요합니다. 저는 유엔 인권이사회와 양심을 가진 모든 이들이 이것을 가능케 하리라 믿습니다. 이제 그 시간이 왔습니다.

(번역: 홍성수)

 

* 참고자료

i) 비디오 연설 자료
링 크

ii) 연설문 원문

Video message by the Secretary-General.pdf

iii) 성적 지향과 젠더정체성에 대한 유엔 보고서 2011 

UN Report - Sexual Oreintation Gender Identity (2011).pdf

iV) 성적 지향과 젠더정체성에 대한 유엔 결의 2011

UN Resolution - Human Rights Sexual Oreintation and Gender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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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d 2012.03.14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너무 좋아서 퍼가도 될까요?

  2. 2012.03.14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2012.03.15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transproms 2012.03.15 23: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그럼요 얼마든지요~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 몰랐네요. "레주파" 꼭 기억해두겠습니다^^ 건승하십시오!

    • 15일자 11:25 댓글 작성자 2012.03.16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16일 10:47 댓글 작성자님, 저한테 댓글을 다셨는데, 저는 블로그 주인이 아니라서 보이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홍선생님, 감사드려요.

    • transproms 2012.03.16 1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그건 제가 로그인안하고 글을 써서 그런 모양입니다. 동일한 내용이었구요. 삭제했습니다. 암튼 감사합니다~ - 홍성수 드림

  4. hyundo lee 2012.03.17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명이 있는 모든이여 !
    하나의 숨결로 만나져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 홍성수 님.

  5. 2012.03.25 0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Cheap Jerseys 2012.07.05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7. 2012.07.13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2012.10.29 1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2012.10.29 1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OECD가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최근 펴낸 보고서(‘젠더 이니셔티브’)를 발간했습니다. 기사를 바탕으로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기사)

 
-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가 38.9%로 OECD 조사대상국 중 1등이고 OECD 평균(15.8%)의 약 2.5배, 2위인 일본과 10%로 압도적 1등: 일본 28.3, 독일 21.6, 미국 19.8, 스웨덴 14.9, 덴마크 12.1 노르웨이 8.7, 뉴질랜드 7.8, 헝가리 3.9
 
- 남녀 임금 격차는 2005년 38.3%에서 2007년 37.8%로 줄었다가 2008년 38.8%로 다시 확대되는 추세로, OECD 회원국의 남녀 임금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
 
- 한국의 여성 고용률 역시 54.5%(2010년 기준)로 조사 대상 40개국 중 32위. 여성 고용률이 가장 높은 곳은 아이슬란드로 82.7%였으며, 스웨덴 76.7%, 덴마크 76.1%
 
- 분석: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가 큰 것은 선진국에 비해 육아를 위해 퇴직하는 여성들이 많아 고임금 여성 근로자가 남성보다 적기 때문이고, 여성 고용률은 20대 58.7%, 30대 53.7%, 40대 64.9%로 30대에 떨어졌다가 40대에 다시 높아지는 구조. 이것은 정규직 여성 중 상당수가 30대에 출산과 육아 문제로 퇴직했다가 40대가 되면 비정규직으로 다시 일터에 나서고 있다는 의미 -> 요거 아주 중요한 포인트!

이 통계 말고도 여성관련 통계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참담한 수준이에요. 형식적 평등을 보여주는 지수는 꽤 괜찮은 편인데, 정치참여율이나 정부 고위직 등에서의 순위가 매우 낮지요. 그러니 백낙청 선생이 이렇게 탄식을 할 수밖에요.

“가령 성평등 문제만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한국 정도의 경제수준과 교육수준을 가진 나라치고 이렇게 여성차별이 두드러지고 소위 성평등지수가 낮은 나라가 없어요 .. 성차별 문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군사문화입니다. 마초문화." (백낙청)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대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2011년 기준 4.7%에 불과합니다. 노르웨이 상장 기업의 여성 이사는 40%라고 하더군요 (기사). EU 보고서에 따르면, EU 내 대기업 회장 중 여성비율은 3.2%, 대기업 임원진은 13.7%나 되구요. 유럽연합(EU)은 리스본협약의 ‘성별쿼터제’에 근거해 최소 20% 이상의 여성임원 비율을 법제화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내린 바 있고, 최근에는 기업 내 여성임원 비율을 최고 60%까지 할당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기사)

그런데도, 이런 
기사에 대한 ‘댓글’을 보면, 주로, ‘여자들이 일보다 가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야근 안하려고 하고 집에 간다’, ‘일을 열심히 안하니 회사 입장에선 어쩔 수가 없다’ 뭐 이런 류의 얘기가 오가곤 합니다. 때로는 압도적인 지지로 베스트 댓글이 되기도...;; 한마디로, 우리 나라는 이미 평등한데, 여성들의 '정신자세'가 문제라는 얘기인데요. 예전에 김준규 검찰총장의 발언도 비슷한 맥락이었죠. (기사)

“전체 검사의 20~30%가 여성이고 최근 임관하는 경우는 절반에 육박한다. 조희진 검사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지청장에 임명됐고 조만간 여성 검사장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여성 검사들이 (일을) 잘해주고 있지만 어려움과 애환이 많다. 최근 내부 조사를 해보니 남성들은 출세를 지향하지만, 여성들은 행복을 지향한다. 남자 검사는 집안일을 포기하고 일하는데, 여자 검사는 애가 아프면 일 포기하고 간다”

아마 김준규 검찰총장은 자기가 본 '현실'을 두고 한 얘기일테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얘길 겁니다. 보기에 정말 답답했을 수도 있고, 여성검사들이 책임감있게 일을 해서 평등하게 대접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어요. 문제는 남성, 특히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 양성평등은 요원한 일이라는 겁니다. "여성들이 일하다 말고 집에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고민해 보지 않고, '책임없이 일하는' 여성만 타박한다면, 정말 곤란한 일이죠. 설사 여성들의 '정신자세 불량'이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사실, 이게 현실인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만), 그런 현실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성찰해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남성들도 육아휴직 보내고 있는지, 남녀 불문하고, 일과 가정이 양립가능하도록 직장환경(퇴근시간 등)을 보장하고 있는지, 직장 내 보육시절은 제대로 완비하고 있는지... 등등을 생각해 보지 않고, 그런 얘기를 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아마 적지 않은 직장에서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근수되고 있지 않은 경우도 허다할거에요. 말 나온 김에 우리 법이 얼마나 강력하게 일/가정 양립을 위한 조치를 마련하고 있는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법만 지켜도 꽤 괜찮아 질겁니다. 참고로 대부분의 조항이 위반시 '형사처벌'됩니다.


-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헌법 32-4)
-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 36-2)
-  근로기준법 상 임산부의 정의: “임신 중이거나 산후 1년이 지나지 아니한 여성”
-  사용자는 임산부를 평일 20시~6시, 휴일에 근로시키지 못함. 다만, 출산후 1년미만 여성의 동의, 임신 여성의 명시적 청구 시, 고용노동부장관이 인가하면 가능. 위반시 2년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 벌금형 (근로기준법 70조)
-  사용자는 산후 1년미만 여성에 대해 단체협약이 있어도 1일 2시간, 1주일 6시간, 1년 15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외근로를 시키지 못함. 위반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 (근로기준법 71조)
-  사용자는 임산부를 도덕상 또는 보건상 유해·위험한 사업(피폭선량 한도 초과하는 원자력/방사선 관련 업무, 지속적으로 쭈그려야 하는 업무 등)에 사용하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65조)
-  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에게 산전과 산후를 통하여 90일의 보호휴가를 주어야 하며, 휴가 기간의 배정은 산후에 45일 이상.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 (근로기준법 74-1)
-  사용자는 임신한 여성근로자가 임산부 정기건강진단을 받는데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여 주어야 하며, 이를 이유로 임금을 삭감해서는 안됨 (근로기준법 74조의 2)
-  사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 근로자에게 시간외근로를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되며, 그 근로자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는 쉬운 종류의 근로로 전환하여야 함.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 (근로기준법 74-4)
-  사업주는 임산부 보호휴가 종료 후에는 휴가 전과 동일한 업무 또는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 위반시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 (근로기준법 74-5)
-  생후 1년 미만의 유아를 가진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1일 2회 각각 30분 이상의 유급 수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근로기준법 75조)
-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퇴직/해고에서 남녀를 차별하거나 여성의 혼인, 임신 또는 출산을 퇴직사유로 예정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 (남녀고용평등법 37조)
-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하거나, 법률이 정한 사유가 없는데도 육아휴직 기간 동안 해당 근로자를 해고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남녀고용평등법 19조, 37조)
-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이유로 해당 근로자에 대하여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남녀고용평등법 19조, 37조)
-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근로자가 육아휴직 대신 근로시간의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에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 다만, 정상적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경우는 예외 (남녀고용평등법 19조의 2)
-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하고 있는 경우, (근로시간에 비례하여 적용하는 경우 예외) 그 이유로 그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 (남녀고용평등법 19조의2, 37조)
-  상시 여성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 사업장에는 근로자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직장어린이집(수유·탁아 등 육아에 필요한 어린이집)을 설치하여야 한다. (남녀고용평등법 2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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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11 국제인권모의재판대회 (한국인권재단 주관)에서 출제된 문제입니다. (일부 내용 수정했음) 쟁점은 이른바 '혐오발언'(hate speech)에 관한 것인데, 표현(학문)의 자유와 인종차별금지(혐오발언금지)라는 두 가지 인권적 가치의 충돌을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어 왔던 문제이고, 한국에서도 이미 현재진행형의 문제가 되고 있구요. 학부생용 문제였는데, 실제 대회 때는 좋은 의견이 많이 제시되어서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이니, 관련 쟁점을 생각해볼 기회라고 생각하시고, 읽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2011 국제인권 모의재판 대회 학부 출제 문제
 
 대한민국에 소재한 국립대학인 ‘한국대학’(가상)의 교수인 ‘김대한’씨(가명)는 ‘세계화 시대의 한국인’이라는 교양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이 강의는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세계화, 다문화주의, 민족주의, 이주노동자 문제, 종교다원주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강의는 학생들이 주제별로 관련 문제들을 조사하여 발표하고 토론한 뒤, 교수가 관련된 사회과학적 논의들을 소개하면서 논의를 정리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강의 시간 중에 김대한 교수가한 몇 가지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다문화주의나 종교다원주의가 오히려 지구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 막고 있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인권운동가들이나 다문화주의자들이 이주의 자유 보장, 이주노동자 인권 보장, 난민신청권 확대, 종교에 대한 편견 반대 등을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김대한 교수는 이러한 입장이 오히려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한국사회의 통합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한국의 ‘다문화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인도나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어린 소녀를 강제로 시집을 가게 하거나, 심지어 부인을 잃은 남성이 소녀를 강간하여 강제로 결혼을 시키기도 한다. 한국 법에서는 명백히 불법이다. 이런 행위가 다문화라는 이유로 정당화하는게 말이 되나?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불 보듯 뻔하다. 특정 국가에 대해서는 아예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입국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
“최근 동남아 국가에서 온 남자들이 한국 여성들을 속여서 결혼한 뒤, 한국 국적 취득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국적을 취득하면, 본국의 가족들을 줄줄이 끌어온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기 때문에 자국에 또 다른 부인이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숨기고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동남아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무능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낳은 자식들역시 학교에서 수학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자료에서도 동남아 출신학생들은 대개 하위권 성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람들이 한국사회에 대거 유입되면, 한국의 경제발전에 짐이 될 수 있다. 일단 불법이주자들부터 철저히 단속해서 추방하고, 외국인의 이주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다문화주의자들은 이주민들이 자신의 문화와 종교를 유지하게 하면서 살도록 해야 한다는데, 이것은 오히려 한국사회의 통합을 해친다. 외국인을 차별하자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국가예산을 외국인들의 고유문화를 보존하는데 사용해야 하나?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사라져 가는 우리 민족문화를 되살리는데 써야 한다.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길이다.”
“한국에서는 '인권'변호사라는 사람들이 한국정부가 난민 인정에 인색하다고 비판한다. 외국인들이 난민을 가장해 불법취업하려는 속셈이 뻔한데, 이를 엄격하게 심사하는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 사회질서가 어지럽혀지면, 그것이야 말로 한국인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이다.”
“너희들은 네 동생이 흑인이나 동남아 사람들 데려와서 결혼하다고 하면 승낙할거냐? 너희들이 어렵게 취직을 했는데,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해고가 되었다면 인정할 수 있냐?“
“2010년 경찰청 통계로 외국인 강력범죄가 총 23,000건이다. 살인이나 강도, 강간은 3일에 한 번씩 발생하고 있다. 범죄 건수 중 2만 건이 조선족, 동서남아 국가 이주민들이 한 것이다. 언론에서 일체 보도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엄청 심각하다. 이러한 객관적인 통계를 바탕으로, 입국 시 지문날인 등을 의무화하는 것은 당연한 형사정책이다.”
“조선족이나 동남아 사람들은 저소득층 지원금에 의존해서 살고 있고, 교육수준도 낮다. 후진국에서 들어오는 값싼 노동인력은 바로 힘없고 가난한 서민과 저임금 경쟁을 하게된다.”
“방송에서 어떤 가수를 보고, '동남아 스타일'이라고 하거나, 어떤 영화배우 보고, '동남아 마약 판매상'이라고 말한 게 문제가 되고 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동남아 가 봐라. 실제로 그렇게 입고 다니고, 그렇게 마약 파는 사람들 많다. 방송에서 '사실'을 언급한 것을 차별이라고 하면 안된다”
 
그는 한국사회의 이슬람화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았다. 특히, 이슬람교도들의 후진적인 인권의식을 지적하면서, 이들의 유입이 한국사회에서 큰 위험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슬람은 여성을 차별하는 종교다. 여성만 차도르나 부르카를 착용해야 한다. 말도 안되는 얘기다. 명예살인“(honor killings)이라고 들어봤나? 여자가 강간당해도 여자의 죄로 여기거나, 오빠나 아버지가 자신의 딸과 여동생을 죽여버리는 풍습이다. 이슬람 국가 중에는 여성은 참정권도 없고, 운전도 못하고, 축구경기도 보지 못하는 나라도 있다. 이런 반인권적 종교에 관용이나 다원주의를 말해선 안된다. 이슬람교도들의 이주를 제한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와 충돌하는 생각을 가진 세력들을 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9.11을 비롯해 최근에 일어난 끔찍한 테러들이 대부분 이슬람교도들의 소행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차도르를 쓰고 온 사람들에게 입국심사를 강화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정당한 것이다.”
“유럽의 경우를 보면 이민 초기에 소수일 때는 가만히 있다가, 점점 수가 모이면 '인권', 다원주의 등을 얘기하며 자기 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종교가 민주주의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 중립을 표방한 우리 헌정질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슬람교도들이 우리 국민과 우리나라를 파괴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놀라운 속도로 한국은 이슬람화된다. 이러한 위험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김대한 교수는 자신의 주장이 오히려 이주민들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것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다만, 지금의 다문화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독일 메르켈 총리, 영국 캐머런 총리,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토르뵤른 야글란 유럽회의 사무총장도 하나같이 유럽 다문화 정책의 실패를 인정했다. 이들의 실패에서 배워야한다.”
“내 얘기는 저개발 국가 사람들을 내팽개치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이주를 제한하자는것 뿐이다. 그들을 돕고 싶다면, 차라리 그 나라에 원조를 해야 한다. 나는 원조에는 적극 찬성이다. 그것이 그들의 인권을 위하는 길이다.”
 
김대한 교수의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 중 일부는 강의 내용이 특정한 종교나 인종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 중에는 동남아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있었다.그들은 인터넷에 “인종차별 교수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고, 삽시간에 화제가 되었다. ‘한국이슬람교도연합’(가상)에서는 이슬람혐오를 부추기는 강의를 중단하라며, 한국대학 정문 앞에서 연일 항의시위를 벌였고, ‘이주자 인권을 위한 모임’(가상)에서는 외국인노동자 차별을 조장하는 교수를 해임하라며, 교육부 앞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김대한 교수는 강의시간에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밝힌 것일 뿐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학문적 입장에서 한국사회의 다문화정책을 비판하고,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지구촌 사회를 위한 나의 입장을 개진한 것이다.”
“외국인이나 이슬람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교육부나 법무부의 통계자료, 설문조사 결과 등 객관적인 지표를 소개한 것이다.”
"나는 인종적 증오심을 부추킨 바 없으며, 쇠락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나의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다."
 
결국, 학교 당국에서는 차별금지법(가상)에서 금지한 발언을 해 교수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김대한 교수를 해임하기로 결정했다. 김대한 교수는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했으나 최종심에서 패소했다. 그 와중에 수업을 들었던 한 학생이 김대한 교수의 발언이 ‘모욕죄’에 해당한다며, 김대한 교수를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김대한 교수를 모욕죄 위반으로 기소했고, 대법원은 최종 판결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김대한 교수는 자신의 해고와 유죄판결이 국제인권법에 위반된다는 점을 들어, 대한민국 정부를 국제인권재판소(Universal Court of Human Rights, 가상)에 제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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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성희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한게 2005년이니까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다른 논문 주제는 일반인들과 얘기하기 적당하지 않은 것도 많은데, 이 주제는 ‘일상의 문제’들이라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많이 배웠구요. 요즘 나꼼수 수영복 사진 때문에 화제가 되면서 사람들의 ‘날 의견’을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기회였구요. 이왕 이렇게 된거 성희롱에 대한 공론형성에 기여하고, 저도 배움의 기회를 갖고자 하는 마음에서, 차분히 한번 정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나꼼수 사건의 '해결'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서 '성희롱/성폭력'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는 취지라고 이해해주시구요. 그리고 '수영복 사진 요구' 이후에 벌어진 문제, 정확하게 말하자면,사진 게시가 문제가 아니라 사진이 수용되는 맥락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지만 그 점은 제외하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좀 기니까 각오하고 읽으시길..^^

성희롱은 법적으로 이렇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성희롱: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공공기관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그 직위를 이용하여 또는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일단 용어에 문제가 있습니다. 성희롱은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라 영어 sexual harassment를 번역한 것인데요. 영어에서 harass는 괴롭힌다(못살게군다, 애먹인다)에 가까운 말입니다. ‘희롱’에 해당하는 말로는 flirting이 있구요. 저는 ‘성적 괴롭힘’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보는데, 여기에서는 법적 용어인 ‘성희롱’을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나중에 법개정 논의가 되면 저는 ‘성적 괴롭힘’이라고 용어를 수정하자고 강력히 주장하려고 합니다)

자, 아무튼 성희롱은 일단 성적인 언동으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굴욕감, 혐오감 유발)을 말합니다. 그런데 괴롭힘을 너무 넓게 정의하면 안됩니다. 세상에 괴로운 일이 너무 많은데, 그걸 다 법으로 규율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법적 성희롱은 ‘직위(권력관계)를 이용한’ 경우에만 성립합니다. 직위를 이용해서 성적 언동을 하면 거부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이 개입해서 해결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아래 사례를 보시면 명확해집니다). 성희롱은 성별을 분리하여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성차별'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성적 언동'하고는 다르구요. 이것은 법이 개입해서 시정해 줘야 합니다. 자, 최근 문제가 된 발언은 이렇습니다.

 ‘정봉주 전 의원께서는 독수공방을 이기지 못하시고 부끄럽게도 성욕 감퇴제를 복용하고 계십니다. 그러하니 마음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동일한 말이 상황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여기서 누군가가 실제로 사진을 보냈는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는 완전히 논외로 해주십시오. 이해의 편의를 위해 제가 사례를 만들어 봤습니다. 

 ① 군인이 민간인 친구들한테 “수영복 사진을 보내도 좋다”는 편지를 보냈다
 ② 소개팅에서 만난 여성에게 애프터 신청을 하면서 “수영복 사진을 보내도 좋다”는 문자를 보냈다.
 
③ 남자 10명, 여자 2명으로 구성된 친목모임에서, 한 남성이 여성들에게 “수영복 사진을 보내도 좋다”고 말했다.
 
④ 초등학교 동창회 자리에서 한 남성이 “수영복 사진을 보내도 좋다”고 발언했다.
 
⑤ 대학 동아리 회장이 회원을 대상으로 “수영복 사진을 보내도 좋다”고 공지했다.
 
⑥ 회원이 총 5만 명인 인터넷 커뮤니티의 운영자가 회원들에게 “수영복 사진을 보내도 좋다”는 내용의 공지를 올렸다.
 
⑦ 정년 퇴임한 대학 교수가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 “수영복 사진을 보내도 좋다”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⑧ 대학 교수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수영복 사진을 보내도 좋다”고 말했다.
 
⑨ 여성 사장님이 남자 사원들에게 “수영복 사진을 보내도 좋다”고 말했다.
 ⑩ 부장님이 부원들한테 “수영복 사진을 보내도 좋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법적 성희롱은 단순히 성적 발언을 한다고 성립하는게 아니구요. 상대의 성적 언동이 '직위(권력관계)를 이용한 것'이고, 이에 따라 굴욕감/혐오감을 느껴야 성립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확실한 법적 성희롱은 8번, 9번, 10번 뿐입니다. ‘성적’과 ‘승진’, ‘해고’ 등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수영복 사진을 보내달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당황스럽고 불쾌할 수 있습니다. 선택지는 1)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사진을 보낸다’ 또는 2) ‘사진은 안보내지만 이 상황이 굴욕적이다’ 두 개 뿐이죠. 이것은 9번에서 보듯이 이 문제는 남자와 여자가 역전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 현행법이 이러한 언동을 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아닙니다. 쇠고랑 안차구요. 경찰 출동 안합니다. 다만 인권위에 진정을 하면 인권위가 시정권고를 해주구요. 민사소송을 제기해서 불법행위에 의한 민사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법적 성희롱은 '불법'입니다.


그런데 8번~10번의 경우에도 어떤 남성 또는 여성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부장님이 마음에 들어서, 수영복 사진을 보내고 사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권력관계에서 성적요구를 했어도 그러한 상호관계가 형성된다면 성희롱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원들/사원들/학생들에게 일반적으로 그런 얘기를 했다면, 그렇게 느낄 사람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말한 순간 그 즉시’ 성희롱이 성립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7번은 어떨까요? 7번은 퇴임한 교수이기 때문에 ‘성적’을 매개로 한 권력이 없습니다. ‘문제있는 행위’일 수는 있지만, 법적 성희롱이 성립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에 1번과 2번은 법적 성희롱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도 별 문제될게 없습니다. 군대에 있는 친구한테 그런 편지를 받고, 기분이 좋으면 사진 보내면 되구요. 싫으면 답장 안하고 절교하면 됩니다. 소개팅남이 그런 문자 보냈으면 그냥 삭제하고 씹으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나 소개팅남한테 성희롱 당했어”라고 일상적으로 표현하긴 합니다만, 엄밀히 그것은 사회적 성희롱도 법적 성희롱도 아닙니다. 간단히 거부하면 되는 문제니까요 (저런 편지나 문자를 지나치게 집요하게 보내면 ‘스토킹’으로 처벌대상이 되지만, 그건 성희롱하고는 별개 문제). 

문제는 3번부터 7번의 케이스입니다. 애매~합니다. 애/정/남에 사연을 보내도, 요건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애매한 이유는 권력관계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법적 성희롱이 성립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아니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6번 케이스만 검토해 보겠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회장의 발언은, 회원들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해야 하는 회장이, ’여성 회원‘을 대상화시켜서 ’차별‘한 것입니다. 일부 여성들이 모욕감을 느낍니다. 물론 (소개팅남 사례처럼) 커뮤니티를 탈퇴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커뮤니티는 그 여성회원들에게는 자신의 삶의 일부나 다름없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추억을 함께했던 회원들을 두고 이렇게 떠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합니다. 회장이 불쾌한 소리 했다고 내가 떠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상대는 회장입니다. 직장 상사나 교수처럼 권력적 지위에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쉽게 반박해서 싸울 수 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그래도 문제제기 하고 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법적 성희롱인지 여부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그런 불쾌한 얘기를 듣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커뮤니티를 떠나기도 싫으니까요. “여성 회원을 한갓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킨 회장은 각성하라!”라고 글을 올립니다. 이제 ’분쟁‘이 발생할 것이고, 커뮤니티 내에서의 정치투쟁을 거쳐 분쟁이 해결되겠죠. 6번 외에 다른 케이스들도 이런 방법으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법적 성희롱을 ’성적 괴롭힘‘이라고 표현하고, 3번부터 7번의 경우를 ’성희롱‘이라고 불렀으면 합니다. 이 때 성희롱은 '성놀이'라는 의미의 가치중립적인 표현이겠죠. 만약 현행법의 정의대로 성희롱이라면 표현을 유지하자면, 3번부터 7번은 ’성희롱이 될 수도 있는 언동‘ 정도가 될 거구요. ’사회적 성희롱‘ 또는 ’성희롱적 언동‘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겁니다. 아무튼 3번부터 7번의 상황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무 문제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3번에서 7번 케이스를 인권위나 민사법정에 가져간다면. 민사배상은 쉽지 않겠지만, 인권위는 경우에 따라 성희롱으로 결정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나꼼수 사태를 저는 ‘나꼼수 수영복 요구 사건’이라고 부르는게 맞다고 봅니다. 비키니 사진을 게시한 것은 그 주체가 일반인이건 기자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 그것과 선명하게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문제는 ‘수영복 사진을 요구한 바로 그 순간’ 생긴 겁니다. ‘나꼼수 수영복 요구 사건’은 3번에서 7번 중 어느 지점에 있습니다. 8~10번처럼 권력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법적 성희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방송 안들으면 그만이지 웬 시비?’라고 쉽게 넘길 일도 아니라는 겁니다. 나꼼수를 즐겨듣는 여성청취자/지지자들이 문제를 삼는 것은 정당합니다. 공영방송도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유연해야 할 필요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문제입니다. 이 정도 문제이기에, 관계자들이 문제를 인정하고 유감표시 하는 정도로 '일단' 넘어가야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래 우리 여성관은 구리다. 미안하게 됐다. 노력하겠다"는 정도면 된다고 하시던데(기사 링크), 저도 그런 정도면 되는 문제라고 봅니다. 어차피 한 번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거든요. 일단 그 정도면 오케이하고, 또 지켜봐야겠지요.

한편, 이러한 주장은 성적 청교도주의(엄숙주의)의 태도하고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슬럿워크 시위 같이 권력관계와 무관한 상황에서의 성적 표현은 최대한 자유로워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저는 성적 표현에 대한 법규제에 명백히 반대하고, 성적 표현의 자유를 급진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입니다(칼럼 링크). 이번 사태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차별적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성적으로 야한 얘기'와 '성적 대상화시키는 차별적 발언'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저는 전자에는 최대한의 자유를 후자에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지적이 불쾌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괜한 트집 잡는다고 느끼신 분도 있을거구요. 그런데 원래 '소수자'의 문제는 '다수자' 입장에서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이래뵈도 
‘성희롱’을 연구해서 박사학위도 받고, 최근에 성희롱 관련 논문만 3편이나 쓴 사람인데요. 그래도 여성들 대할 때 실수 많이 합니다. 이론 좀 안다고 잘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심사숙고해서 한 말이 차별적인 말이 될 때도 있습니다. 나름 인권전문가 행세도 하고 다닙니다만, 지금도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를 대할 때는 여전히 조심스럽습니다. 가장 어려울 때는, 나름대로 '배려'해서 한 말이 '차별'적이라고 지적받을 때입니다. 지금도 어렵지만, 그래도 저는 남성이고, 이성애자고, 비장애인이니까 그런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성적 자유와 성희롱/성차별의 경계를 구획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도 박경신 교수 방심위 성기사진 게시를 성적 자유로서 옹호하는 입장에서 위의 칼럼을 썼지만, 그 사진 자체가 차별적이라고 지적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좋은 성찰의 계기였습니다. 참고로, 박 교수는 그런 지적을 받은 후 사과하고 블로그에서 사진을 안보이게 조치했습니다)

나꼼수가 어떤 존재였나요? 강자들의 세상에서 목소리도 한번 제대로 못내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서서, 시원하게 욕지거리 한 판을 해준거 아니었나요?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속 시원함을 느꼈던 것이구요. 그런데 그 대열에 함께 했던 일군의 여성들이 모욕감을 느꼈다며 문제를 제기합니다. 다수 남성들의 틈바구니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고, ‘그냥 내버려둬라?’, '방송 안들으면 되는거 아니냐?' 글쎄요.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들도 여성이기 이전에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닥치고 정치'에 참여했던 동지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런 대접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이렇게 커진 것은 문제제기한 사람들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어설프게 대응하고 있는 나꼼수 멤버들, 그리고 문제제기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심지어 모욕까지 한 일부 나꼼수 팬들이 문제입니다. 물론 일부 언론이 이 사건을 계기로 나꼼수 죽이기에 나선 것은 정말 황당한 일이죠. 그들에게야 말로 “그냥 나꼼수 듣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됩니다. 하지만, 나꼼수를 애청하고 그들과 함께 하려는 ‘여성’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는 거구요. 

제가 여기서 이렇게 긴 글을 쓴 것은 사과를 요구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공직자였거나, 공영방송이면 끝까지 따져 묻고 싶은 문제지만, 해적방송 나꼼수에게 그렇게 집요하게 요구한다는 것도 부당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적당히 덮고 넘어간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결되건 간에, 이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성희롱과 성차별'문제에 대해 숙고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별 일도 아닌 일'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지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에 바뀌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이번에 한 번 생각해 두면, 다음에 또 생각해야 할 때는 조금 더 나아질 겁니다. 세상은 그렇게 진보해 왔고, 또 그렇게 진보할 겁니다.


* 이 글을 쓰면서도
 비키니 사진을 올리신 분들이 마음에 걸리는데, 그분들은 스스로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한 것이구요. 이 문제에서 완전히 논외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혹시라도 그 분들의 명예를 훼손하는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 트위터에서도 항상 논의하기 전에 '사진 보낸 분들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님'을 전제하고 시작했습니다. 다시 한번 이 점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 성희롱에 관련한 제 논문은 이 블로그의 "학술논문"게시판에 있으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물론 '학술논문'이라는 점을 감안하시구요^^

Posted by transpr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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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가당씨 2012.02.06 2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에 답글 달기 위해서 티스토리 로긴 했습니다.
    진중권씨 트위터 타고 왔네요.
    글 자체의 흐름도 너무 유려한데, 중간에 다수자로서의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 는 대목이 너무 사무칩니다.
    사무치고 감사하고, 무엇보다 이 글 자체에 감사합니다.

    저는 본의 아니게 소수자로 살아온 시간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분명히 메인 스트림에 속해있는 사람인데, 메인 스트림 안에서의 소수자라면 참 아프고 힘듭니다.
    님이 정의하신 법적 성희롱에 대한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믿던 분에게 겪은 힘든 경험이었지만 결국 손해볼 사람은 저기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떠나온
    그런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화딱지 나고 속터지는 것은
    내가 너무 부끄럽고 모멸감을 느끼는데, 그 모멸감을 표현했을 때 돌아온 답변이
    "내가 그런 의도로 너를 대하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오해하느냐?
    내 순수한 의도를 알아달라. 왜 그걸 몰라주느냐?" 라는 답변이었을 때였습니다.
    왜 내가 모멸감을 느끼는지 , 상대방의 순수한 의도(!)를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음을 왜 변명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설명해야 했을때.

    나꼼수 4인에게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의 일일 것입니다.
    믿고 아꼈던 4명에게 (물론 그들에게 도덕적 완벽함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너(희)는 단지 대상일 뿐이라고 이야기 들었던 그 때에.

    화딱지 나고 속터지는데 왜 그렇게 화딱지나고 속이터지는지, 그 인지 부조화를 조화시키려고
    화딱지나고 속터지는 내가 뭔가 이상하게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그들을 미워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이렇게 속시원하고 바로바로 제가 이야기하고 싶던 그것을 이렇게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 대두교 2012.02.07 0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논의자체는 공감이가지만 나꼼수에대한애정을 이유로 자기의 사랑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내가 너를 계속 사랑하고싶으니 사과해라라고 말하는거는 유치한거 같아요. 나꼼수는 첨부터 안티엠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페미나 마초 프레임 논의는 이미 자기중심적인 순애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아쉬워도 사람잘못봤다고 생각하고 미련없이 떠나주는게아주는게

  3. eter 2012.02.07 1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꼼수의 경우, 청취자가 애정을 준 이상 의도하지 않았어도 약간의 권력관계가 생긴다고 보기 때문에, 까페 커뮤니티 분란의 예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절이 싫어 떠나기 이전에 절을 바꿔보겠다는 최대한의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 저승사자 2012.02.10 1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꼼수는 3~7 그 어떤 경우에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예가 적절하지 못한 것 같네요.
    3~7은 적어도 가해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것(수영복)을 들어주지 않았을 때
    권력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 공동체내에서의 자신의 위력을 이용하여 불이익(따돌림 등)을 줄 가능성이 있고..
    피해자 또한 그럴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꼼수의 경우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 경우의 불이익이 전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조차 수영복 사진을 보내주지 않으면
    자신에게 어떤 피해가 있을 것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거에요.

    그저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불편함일 뿐이죠.
    다만, 나꼼수팀이 그런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직장과 사회에서 그런 환경에 노출된 여성들의 입장에 대한 좀더 깊은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은 있을 수 있겠죠.

    그와 별개로,
    이번 나꼼수 논란과 관련한 최대의 피해자는 누굴까요?
    나꼼수? 공지영? 삼국까페?

    바로 비키니 사진을 올린 그이입니다.
    논란 초기 여성주의자들은 사실 비키니 사진을 올린 당사자에 대한 직접 타격을 먼저 시작했거든요.
    개념없는 머리빈녀(일명, 빠순이?) 정도로...
    지식인들이야...
    이런 사건들에 왈가왈부하고...자기 논리 세우면서,
    자기 할 말 하는 것이 기분좋을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엔 오히려 이런 사태들을 즐기는 듯.)
    본인이 직접 괜찮다고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그 당사자는 이렇게 논란이 지속되는 것이 정말 괴롭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나꼼수팀이 빨리 논란을 일단락시키지 않고....
    논의가 좀더 풍성해지길 기다렸다는 입장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들과 가치관이 다른 여성은 보호할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듯한...
    삼국까페의 입장은 말할 것도 없구요.

    여러모로 속칭 진보주의자들의 그안의 사람을 보지 못하고..
    머리와 논리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재단해버리는 못된 습성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요즘입니다.